추억
장롱 텔레비전
전기가 들어오고 예숙이네 집에 텔레비전이 생겼다.
장롱처럼 다리가 있고 양쪽으로 문을 열면 그 속에 사람들이 들어 있었다.
저녁이면 마을사람들이 예숙이네 집으로 모여들었고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텔레비전 속에 나오는 사람들 노래도 듣고 연속극도 보았다.
나는 계속 궁금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들어갔다 어디로 나오는지 그리고 저렇게 작은 사람들이 말을 하는 게 신기해서 자꾸 텔레비전 뒤쪽을 봐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서
' 아부지 저기 사람들은 누가 데리고 온 거여 예숙이네 집에 숨어 있는 거여 '
' 아녀 저 사람들은 서울에 사는데 테레비에 나오는겨 '
' 서울이 을매나 먼데 여그가졍 온 거여 ? ' '
' 그게 그니까 저 사람들은 텔런트여 '
' 텔런트 그러니까 테레비에 나오는 사람이라 텔런트여? '
' 조용허구 저거나 봐 '
저녁을 먹으면 동네사람들은 연속극을 본다고 매일 예숙이네 집으로 모이니까 예숙이네 할머니가 가끔 신경질을 부렸다.
예숙이 남동생 둘이 어린데 사람들이 시끄러워서 애기들이 칭얼거리고 잠을 못 잔다고 할머니는 그만들 가라고 했다.
저녁에 텔레비전이 보고 싶어서 예숙이네 집에 갔는데 상심이가 예숙이 동생을 업고 있었다.
' 상심아 너 왜 태섭이를 업고 있어 ? '
' 응 예숙이가 태섭이 업어주면 텔레비전 보게 해 준댔어 '
' 그런 게 어딨어 난 텔레비전 안 봐두 돼 예숙이 나빠 ' 하고 집으로 와서 생각하니 텔레비전 있다고 으스대고 잘난 척하는 예숙이가 미웠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버지한테 낮에 있었던 얘기를 했더니 이제 텔레비전 보러 가지 말라고 하셨다.
엄마는 ' 내가 이따 가서 조카한테 한마디 혀야 겄네 ' 하셨다.
예숙이 아버지는 울 아버지한테 조카였고 예숙이는 나한테 아즘니라고 불렀다.
' 가만둬요 그 집도 맨날 귀찮겄지 동네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동 모여드니 그 집도 을매나 불편하그써 '
며칠 동안 나는 예숙이네 집에 안 갔다.
하루는 상심이랑 놀고 있는데 예숙이가 와서 ' 인섭이랑 태섭이 업어주면 너네는 맨날 테레비 보게 해 줄게 ' 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있는데 상심이는 ' 그래 ' 하면서 예숙이네 집에 갔다.
' 엄마 우리도 테레비 사 아부지 테레비 사줘 '
언니도 테레비 갖고 싶다고 예숙이네 가는 거 싫다고 했다.
' 그게 을마나 비싼 건데 그걸 사 '
엄마는 화를 내면서 전기가 들어오니까 돈이 많이 나간다고 했다.
' 나 테레비 안 사주면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갈 거야 ' 언니는 엄마 뒤를 날마다 쫓아 댕기면서 테레비 사달라고 졸라댔다.
' 입장 (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 ) 전파사 가서 테레비 한번 알아봐 을매나 하는지 '
' 아이고 이 냥반이 그게 얼마라고 그걸 사유 '
' 나도 조카집 가서 보는 게 눈치 보여 그러니 다달이 얼마인지 알아봐 '
아버지는 예숙이네 집에 가는 게 불편하셨나 보다 생각했다.
어느 날 학교 갔다 왔는데 우리 집 안방에 예숙이네랑 똑같은 장롱 털레비전이 윗목에 놓여 있었다.
너무 신나서 저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언니도 학교 갔다 와서 텔레비전을 보더니 막 춤을 추면서 좋아했다.
언니는 친구들한테 자랑한다고 나갔고 나는 상심이 집에 가서 앞으로 우리 집에서 테레비 보라고 했다.
' 나는 동생 없으니까 이제 예숙이네 가지 말고 우리 집으로 와 '
' 진짜 너네도 있어 ? '
' 응 있어 있다가 밥 먹고 와 '
' 우리 식구 다 가도 되지 ? '
' 그려 다 와도 괜찮아 '
그날부터 마을사람들이 갈라져서 예숙이네집으로 가고 우리 집으로 오고 그랬다.
전기도 들어오고 텔레비전도 생기고 라디오도 있어서 좋은데 사람들이 편을 가르는 게 싫었다.
우리 엄마는 그날부터 밥도 엄청 많이 했다.
동네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고 늦게까지 텔레비전도 보고 남자아저씨들은 사랑방에서 화투도 치고 그랬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엔 산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쪽저쪽으로 돌려 아니 이쪽 아니 더 더 하는 일이 수없이 많았고, 어느 때는 텔레비전이 치치칙칙칙 거려서 말소리가 잘 안 들렸다.
나는 가수들이 노래 부를 때 뒤에서 춤추는 여자들을 좋아했다.
나중에 크면 텔레비전에 나와서 춤추는 여자를 할 거라고 말했고,
언니는 가수가 될 거라고 해서 내가 ' 언니 노래 부를 때 뒤에서 예쁘게 춤춰줄게 ' 했다.
엄마는 공부해서 높은 사람 해야지 무슨 가수냐고 춤이냐고 야단을 쳤다.
내 생각엔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제일 높은 사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