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06화

담배가 최고여

추석선물

by 서윤

담배가 최고여


추석 명절이 한참 남았는데 엄마는 술을 담그느라 매일 찹쌀 맵쌀 좁쌀을 시루에 쪄 내서 말리는데 그때 그 밥들이 고슬고슬 맛있어서 떡 맛이 났다.

엄마 몰래 먹다가 혼이 나도 난 꼬실 한 밥을 한주먹씩 먹고 체해서 손가락에 바늘 세례를 받곤 했다.

손가락에서 검은 피가 쏟아지면 엄마는

' 지집년이 그래 처먹으니 탈이 나는 겨 ' 하면서 또 야단을 쳤다.


(창고)에 어른키만 하고 아주 뚱뚱한 항아리마다 종류별로 술이 가득가득 담기고 밭에 다녀오실 때마다 엄마는 솔잎을 따오셨다.

옥경이네 방앗간은 날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하얀 쌀가루 참기름 들기름 콩가루를 빻아대느라 방앗간 기계소리가 우우웅 우리 집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 아줌니 송편 맹글어 드릴라구 왔시유 '

' 아이구 이리 고마울 때가 '

대가족에 인사 오는 손님도 많아서 우리 집은 명절이면 대청마루 가득 음식이 쌓여갔는데 큰 새언니랑 엄마 둘이서 할 수가 없어서 동네아주머니들이 오셔서 일을 도와줬다.


추석날 제사를 지내는데 우리 집에서 지내고 기로조카네 가서 지내고 도근이 오빠집에서 지내고 현근이 오빠집에서 지내고 6촌까지는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냈다.

' 엄마 현로 조카네서 송편 갖고 왔어 '

' 그려 너도 이거 저 윗집에 다 돌리고 와 '

제사도 같이 지내고 음식도 서로 맛보라고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어서 명절날 나는 심부름하느라 엄청 바빴다.


언니들이 한 명씩 오후에 왔는데, 그때부터 난 안방에서 아버지랑 화투놀이를 하면서 언니들이 뭘 사 왔는지 알려주는 것도 내 몫이었다.


언니 부부가 오면 아버지는 ' 나가봐 뭐 사 왔나 보고와 ' 했다.

' 응 알았어 아부지 '

그날은 서울 사는 셋째 언니가 제일 먼저 왔고 소고기를 사 왔다.

' 아부지 셋째 언니 쇠고기 사 왔어 '

' 밥만 먹고 가라고 혀 '

아버지는 소고기를 싫어하셔서 전혀 반갑지 않다고 하셨다.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아버지는 참 이상하고 생각했다.


' 아부지 둘째 언니가 돼지고기하고 닭 10마리 갖고 왔어 '

둘째 언니는 양계장을 하니까 항상 닭을 많이 갖고 왔다.

' 둘째네 술상 차려주라고 햐 '

' 엄마 셋째 언니는 밥만 먹고 가라고 했고 둘째 언니는 술상 차려주랴 '

' 아이고 저 냥반 또 시작이네 애들이 힘들게 사들고 오면 고생혔다 혀야지 어찌 맨날 저러시는가 모르겄네 애들 속상허게 '


엄마는 한숨을 내쉬면서 언니들 밥상을 차려주었고, 우리 언니들은 그런 게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 대꾸도 안 했다.

' 아부지 아부지 작은오빠가 괴기도 많이 사 오고 아부지 담배도 두 보루 사 왔어 '

' 어이구 이런 고마울 때가 아비 마음을 용케두 알았네 어여 밥 채려 주고 윗방에서 쉬라고 혀 먼 길에 을매나 고단하그써 '


울 아버지는 고기도 싫어하시고 술은 아예 못 드셔서 담배하고 귤을 사 오는 자식만 진짜라고 하셨다.

' 아부지 다섯째 언니가 아부지 담배 세 보루 사 왔어 '

' 그려 고맙네그려 갸는 사는기 어려울 긴데 아주 큰 맴 먹은겨 고맙다고 혀라 '

' 넷째 언니는 빈손으로 왔댜 '

' 으이구 거그는 살림살이가 힘든겨 어서 밥 차려주라고 혀 '


자식 아홉을 낳아 하나도 안 죽이고 키워냈다고 아버지는 항상 그게 자랑이셨는데, 아버지에게 담배를 사다 주는 자식이 일등이고 그다음이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순서로 자식들을 반겼는데 어린 나는 아버지가 왜 그러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니들이 마당 멍석 위에서 밥을 먹고 형부들은 술판이 벌어졌다.

나는 집이 너무 시끄러워서 대문 앞에 앉아 있는데 준근이 오라버니가 지나가시길래 ' 오라버니 어디 가셔유 우리 집에 술 엄청 많으니까 들어가서 술 잡숴유 '

' 아 고맙네 동상 (동생) 은 밥 묵었는가 '

' 어 송편을 많이 묵어서 배불러유 '


준근이 오라버니는 동네에서 소문난 술꾼이었고, 술 냄새도 기가 막히게 맡았다

아마 그날도 우리 집에 오는 길이었을 건데 내가 먼저 들어가라고 했으니 얼마나 좋으셨을까 준근오라버니는 예숙이아버지 형근이 오라버니랑 나이가 같다고 했다.


추석 다음날 하루 종일 인사 오는 손님들 때문에 엄마하고 언니들은 계속 술상을 차리고 치우고 아버지는 오는 손님마다 뭐 사 왔냐 나한테 물어보시니까 난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담배 사 온 사람을 알려드려야 했다.


저녁에 둥근 보름달을 등불 삼아 가족들이 마당에서 윷놀이를 했다.

부부끼리 한편을 먹고 윷놀이를 하면서 광에 있는 술독을 비워갔고, 그날은 독구 (개 이름) 녀석도 고기를 많이 처먹어서 배를 허옇게 내보이고 잠이 들었다.


부엌귀퉁이 꽈리는 주홍빛으로 주렁주렁 바람에 흔들리고 소귀를 닮은 맨드라미가 언니들 얘기를 듣느라 보라색 귀를 바짝 세우고 잠이 들었는데 밤새도록 마당에선

' 윷이여 투윷이여 모다 모, 아이고 빠꾸도네 '


우리 가족 윷놀이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달 속에 토끼는 잠도 못 자고 밤새 방아를 찧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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