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들깨 모종
여름이면 일손이 부족해서 엄마는 내 손이라도 빌려야 한다면서 밭으로 나를 끌고 다녔다.
아버지는 어떻게든 내가 밭에 가는 걸 막았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새벽부터 다른 집 일을 가셔서 저녁이나 되어야 돌아오실 거였고 나는 꼼짝없이 엄마손에 이끌려 밭에 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 어여 호미 들고 따라 나서 '
' 응 알았어 '
엄마는 머리에 들깨모종이 담긴 대야를 이고 나는 물주전자랑 호미를 들고 뒷산을 넘어가야 있는 밭으로 향했다.
가는 길 양쪽으로 싸리꽃이 하얗게 피어 벌들의 양식을 제공해주고 있었고 뒷산 어느 나무에서 우는지 매미가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밭에 도착하니 같은 모양으로 동글동글하게 두럭 (이랑 ) 이 쌓여 있었고 엄마는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나에겐 그 구멍에 들깨 모종을 넣으라고 하셨다.
엄마 뒤를 따라가면서 모종을 넣다 보니 땀이 흥건하게 옷을 적시고 뜨거운 태양에 살이 익어가는 것 같았다.
한 고랑을 다 하면 엄마는 호미로 흙을 덮었고, 나는 따라가면서 물조루로 흙 위에 물을 뿌렸는데, 물이 무거워서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파서 몇 번을 넘어질 뻔하면서 일을 했다.
' 엄마 나 힘들어 그만하고 싶어 '
' 밥은 다 공짜로 나오는 줄 알어 ? 그까짓 거 조금 했다고 못한다 하면 엄마 혼자 낼 까졍 해도 다 못하니까 좀 더 하고 가 '
' 나 팔 아프고 힘들어 더위 먹었는지 머리도 어지러워 '
' 그라믄 저 나무밑에 가서 조금 앉아있다가 와 '
' 응 알았어 '
나는 나무밑에 앉아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엄마는 밭 끝쪽에서 물조루를 들고 있었고 나는 금방 토할 것 같았고 막 어지러워서 ' 엄마 엄마 엄마 ~~ ' 엄마를 불러도 안 들리시는지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누워서 하늘을 보는데, 하늘이 빙빙 돌고 구름이 춤을 추고 나뭇잎이 여러 개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날 들깨모종을 하러 갔다가 내가 더위를 먹어서 며칠 동안 토하고 열나고 설사하고 많이 아팠다.
' 이 사람이 이 더위에 애는 왜 밭에 데리고 가서 저 꼴을 만들어 '
'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랬어유 일은 많고 손은 모자라니 모종이나 놓으라고 데리고 간 거쥬 '
' 농사일이 자식보담 중요한 거여 '
' 난들 어쩌유 그라믄 깻모는 시들해지는데 하루빨리 심어야 허니께 그런거자누 '
' 막내는 원체 몸이 약헌거 뻔히 알믄서 차라리 일꾼을 얻었어야지 '
' 일군 얻기가 어디 쉬워유 그깟 깻모 좀 놓았다고 픽 쓰러질 줄 누군 알아남유 '
그 일로 아버지는 엄마에게 엄청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는 나 때문에 부모님이 다투는 게 싫어서 내가 죄인 같았다.
그 후로 엄마는 절대 나를 밭에 데리고 가지 않으셨는데 자라면서 내가 밭에 가겠다고 하면 엄마는 ' 누굴 죽이려고 밭에 간다 그려 ' 하면서 매번 소리를 지르셨다.
다섯째 언니가 시집가기 전에 몇 년 동안 농사일을 돕고 일군들 밥을 해주었는데 한 번은 내가 밭에 따라가고 싶어서 언니하고 밭에 갔다왔는데 그 일을 아버지가 알게 되었고 괜히 다섯째 언니만 아버지에게 혼이 났다. 나는 언니한테 너무 미안해서
' 아부지 언니가 가자고 한 거 아녀 내가 따라간 거여 '
' 그게 그거여 동생이 간다 해도 말렸어야지 그게 언니인겨 '
' 아녀 언니는 따라오지 말랬어 '
' 담부터는 들에 나가지 말어 '
' 응 이제 다시는 밭에 안 갈 거여 그러니까 언니 혼내지 말어 언니가 또 서울 가면 나는 심심해 '
언니는 그날 많이 울었고 나한테 다시는 밭에 간다고 하지 말라면서 아버지는 너 밖에 모른다고 서운하다고 했다.
나는 언니한테 너무 미안해서 앞으로 말 잘 들을 거니까 같이 살자고 했고 언니는
' 너 또 말 안 들으면 언니 바로 서울 갈 거야 '
' 응 이제 언니 말 잘 들을 거니까 나랑 여기서 살어 '
농촌의 여름 태양은 곡식을 영글게 했고,
그 곡식 한 톨은 우리를 성장시켰다.
가을들녘이 황금으로 물들면 그건 그저 곡식이 아니라 농부들의 땀방울이 스며든 것이라 여겨져서 마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고단함이다
작은 손 하나라도 보태야 하는 농번기에 약하다고 어리다고 막내라고 밭 근처에도 못가게 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먹으면서 나도 자라나고 있었다.
도시의 소음은 경제의 속도였고
농촌의 소음은 밥상의 속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