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마실 30화

선거운동

투표

by 서윤

선거운동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마을에 자주 들어왔고 구판장 흙벽에 사람 얼굴이 크게 찍혀있는 종이를 붙여놓았다.

어른들은 만나기만 하면 ' 이번엔 누굴 찍어야 한대유 누가 될 거 같아유 ' 하면서 벽에 붙은 사진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 그려 그 양반이 그려도 쪼까 더 나을겨 ' 하면서 벽보 앞에 모여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 즈아부지 이번엔 그려두 이ㅇ희 그 양반을 찍어야겠지유 ? '

' 멀기는 혀도 같은 종씨니까 그려야겠지 '

' 이번에도 이ㅇ근이가 될 거라 하던데유 '

' 그이는 계속 혀 먹었으니 이번에도 별 탈 없으믄 또 해묵겠지 '

' 저 아랫동네는 벌써부텀 고무신에 돈 봉투도 받았다고 허던데 우리 동네는 아직 그런 소리는 없든데유 '

' 받은 놈들이 받았다 허거 써 다 뒤로 받고 입 닦는 거지 '


아버지와 엄마도 평소와 다르게 밥 먹을 때 이ㅇ희 이ㅇ근이니 누구를 찍어야 하는지 같은 이야기만 계속하셨다.


' 아부지 이ㅇ근이믄 우리 오빠들하고 같은 근자 돌림인데 이ㅇ근이 해줘유 '

' 아니여 그이는 우리 종씨가 아니구 경주 이 씨여 이ㅇ희 그 냥반이 전주이가여 '

' 근데 아부지 국회의원은 뭐 하는 사람이여 왜 그걸 엄마 아부지가 찍는 거여 '

'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여 우리 거튼 사람들 잘 살게 해 줄 양반을 잘 뽑아놔야 사는 게 좀 나아질까 그런 거지 '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마을에 낯선 이들이 뻔질나게 드나들고 마을사람들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기도 했고 옥경이 아버지랑 하섭이 아버지랑 멱살잡이를 하면서 싸우기도 했다.


구판장 앞에서 고기에 막걸리에 날마다 잔치가 벌어졌는데 모이기만 하면 누굴 찍느냐 하는 이야기만 했다.


' 돈을 받았으니 이ㅇ근이를 찍어야겠지유 ? '

' 이 사람 큰일 날 사람이네 아 집안이고 종씨인데 이ㅇ희를 뽑아야지 무슨 소리여 '

' 아 그래두 이ㅇ근이가 돈도 주고 고무신도 다 돌렸는데 어떻게 받아먹고 입을 닦아유 '

' 그거야 뭐 주는 거니 받은 거고 비밀투표인디 누구 찍었는지 그 양반이 알 거도 아니잖어 '

' 그려도 그렇지유 나중에 알게 되면 우리 마을이 불이익을 받을까 봐 그러는 거쥬 '

' 알긴 누가 알어 입 다물고 있으믄 되는 거고 이번엔 양심적으로 뽑자는 겨 '


누구는 얼마를 줬다 또 누구는 더 주더라 하면서 선거 때는 눈먼 돈이 들어오니 좋다면서 선거를 자주 하면 좋겠다고 껄껄껄 웃기도 했다.


우리들한테도 낯선 아저씨들이 과자를 사주고 100원씩 나눠주면서 집에 가면 부모님한테 꼭 말하라고 하기도 했다.


선거날이 임박해 올수록 마을 사람들은 패를 나눠서 큰소리로 다투기도 하고 우리 마을은 통일해서 누구를 찍어야 한다고도 하고 투표는 자기 마음이라면서 알아서 찍게 하는 게 맞다고도 했다.


그리고 오전에 검은 양복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가면 또 오후엔 다른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굽신거리면서 악수를 하고 다녔다.

어른들은 그때마다 고기를 먹었고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다가 또 이놈 저놈 하면서 싸우기를 반복했다.


' 오늘은 마을회관에서 회의를 한대유 즈아부지 거기 가실 거유 '

' 가보긴 혀야지 무슨 말인가 들어보긴 혀야겠지 '

' 말들이 다 다르고 누가 무슨 속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조심 혀유 괜히 나중에 말 나오믄 그렇잖아유 '

' 걱정 말어 난 가만히 듣고만 올겨 '


드디어 선거날 마을사람들은 삼삼오오 면사무소에 가서 투표를 하고 왔다.

비밀투표라면서 비밀은 없었다.


' 지는 그냥 1번 쿡 찍었어유 '

' 나두 그냥 1번 했구먼 '

' 그려도 받아먹었으니 찍어줘야지 어쩌거써유 '

' 돈이 제일 힘인겨 이ㅇ희는 이번에도 안타깝게 되어써 '


투표가 끝나고 며칠 후에 이ㅇ근이 당선되었다고 마을에선 또 잔치가 벌어졌다.

집안이라고 종씨라고 찍어줘야 한다는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자신들이 찍어 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다면서 즐거워하고 박수를 치고 이제 잘 살아갈 일만 남았다면서 흥에 겨워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렇게 날이면 날마다 잔치를 벌이고 술과 고기에 새 고무신을 신고 좋아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마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아부지 이제 그 아저씨들 우리 동네에 안 와 ? 과자도 사주고 돈도 주니까 좋은데 고기도 많이 사줬잖어 '

' 그이들은 이제 안와 그때뿐인겨 그 양반들은 우리 거튼 사람들 기억도 못 헐거여 다음 선거 때나 또 나타나거찌 '

' 에이 그런 게 어딨어 우리 동네 사람들이 찍어줘서 된 거라던데 '

' 그런 게 세상인심이여 정치허는 사람들 속엔 구렁이가 백 마리는 들었을 거여 우리 거튼 사람들은 그냥 농사일이나 부지런히 혀서 굶지 않으면 감사허게 생각하믄서 살믄 되는 거여 '


구판장에 붙어 있던 사진은 비에 젖고 햇살에 빛이 바래져서 군데군데 찢겨나갔고 우리들은 남은 사진에 수염을 그리면서 놀고 또는 찢어서 딱지도 접었다.


마을을 한바탕 휩쓸고 간 국회의원 선거는 차츰 잊혀져 갔고,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이 하던 양복 입은 낯선 아저씨들도 아버지 말씀처럼 우리 마을을 잊어버린 건지 그 이후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년 뒤 다시 선거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거운동은 마을사람들에게 돈도 주었고 고무신도 주었지만, 선거운동으로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다툰 어른들은 조금씩 앙금이 생기고 금이 가서 본래의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을 사람들은 인물도 됨됨이도 종씨도 집안도 우선이 아니었다.

받았으니 찍어줘야 했고, 잊힐 걸 알면서도 받은 것에 대한 인정이 먼저였다.

미디어의 힘도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고 선택에 특권을 누리지도 못했다.


단 며칠이어도 공짜술에 고기에 돈봉투를 받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때는 희망조차 품지 않았었기에 절망을 느낄 필요조차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 그동안 ' 마실 ' 을 사랑해주시고 응원과 댓글로 공감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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