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J 교육칼럼 - "스스로 하게 둔다"는 말의 함정
요즘 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말.
자기주도학습
자기주도 학습이라는 말이 참 많이 들려옵니다. 학교에서도 강조하고, 학원에서도 가르치고, 심지어 입시 설명회에서도 “자기주도성이 있는 학생이 대학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부모로서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는 이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또 우리는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정말 '그냥 놔두는 것'이 자기주도의 시작일까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무조건적인 방임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극이 있습니다.
자기주도 학습은 단순히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뜻하지 않습니다.
AI 시대의 자기주도는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색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입니다.
스케줄표를 혼자 짠다고 해서 자기주도적인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한다고 해서 자기주도적인 것도 아닙니다. 진짜 자기주도란, 왜 이걸 공부하는지 알고, 어떤 방식이 나에게 맞는지를 스스로 탐색하고 결정하는 힘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무엇을 해줘야 할까요? 많은 부모님들이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이가 오히려 멀어졌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어떤 분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라고 질문하시기도 합니다. 이 질문에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부모는 방향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을 열어주는 사람입니다.”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통제도, 무관심도 아닌 ‘안전한 실험의 공간’입니다.
실수해도 괜찮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고,
망설이다가 돌아가도 괜찮은 그런 공간 말입니다.
AI 시대에 살아가는 아이들은 모든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와 리듬을 이해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접근해볼 수 있는 심리적 여유는 오직 부모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왜 이렇게 틀렸어?”가 아니라
“이번엔 어떤 부분이 어려웠니?”라고 묻는 태도,
“이걸 왜 이렇게 했어?”가 아니라
“너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했니?”라고 물어주는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는 스스로 판단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율성의 시작이 됩니다.
앞편에서 언급했던 KAIST 서용석 교수는 AI 시대의 학습 역량으로 "감정 감지력과 자기 표현력"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관계 안에서의 피드백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주도는 사실,
혼자 두면 되는 게 아니라 믿어주고 지켜봐줄 누군가가 있을 때 자랄 수 있는 힘입니다.
심리학자 레브 비고츠키는 이를 ‘근접발달영역(Zone of Proximal Development)’이라 표현했습니다. 아이의 현재 수준과 잠재 능력 사이에 존재하는 이 ‘틈’을 성인이 적절히 도와주는 과정에서 진짜 성장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 ‘적절한 도움’이란, 아이가 넘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되, 아이 스스로 딛고 서게 해주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요즘은 AI가 학습의 많은 부분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시간표를 짜주고, 문제를 풀어주고, 글을 써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모는 조용한 조력자로서, 아이의 방향 감각과 동기를 되살려주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숙제를 안 해왔을 때,
"왜 안 했니?"라는 말 대신
"오늘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니?"라고 물어주는 것.
자기주도는 부모가 모든 걸 해주는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질문하는 부모'가 되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교육일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 Part 5 (공부란 결국 의미를 찾는 여정입니다)에서는 성적보다 먼저 물어야 할 질문,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왜 배우는가"를 찾도록 돕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혹시 이아와의 공부 속에서 느끼신 점이나 공감되는 장면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함께 질문하고,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우리 모두의 공부가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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