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묘약 05화

<묘약 5> 오이벌레의간

by 빵먹는 영철이

1-5. 마음의 소리마저 들을 수 있을까. 오이벌레의 간 (엽록소 주머니).


우리는 새 묘약을 개발하거나, 원래부터 있던 묘약을 사용하기 좋게 발전시키려고 밤 낮으로 노력해 온 많은 묘약 연구원들의 수고를 통해 지금의 소중한 묘약들을 얻을 수 있었다. 헌데 어떤 연구원은 기존의 묘약을 널리 소개하고 새로운 적용 분야를 개척하는 것 만으로 아주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핀란드의 착하고 평범했던 청년 헤르 스프르브가 바로 그 중 하나다.

1932년 12월 10일. 당시만 하더라도 헤르는 핀란드 렘멘요키산 근처 초소에서 보초를 서던 한 명의, 키 작고 말 많고 순진하고 겁 많은, 평범한 이등병이었다. 그 때의 헤르는 연구원이기는 커녕 사람에게 여러 개의 눈을 만들어주는 연고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듣고도 관심이 없던,* (주석 ; 1997년 예멘의 연구원 얀 알사시가 개발했다) 또한 티눈을 먹어 치우는 귀뚜라미*를 되살리려는 연구가 시작됐다는데도 관심이 없던 청년이었다. (주석 ; 기원전 약 2000년 경, 지금의 인도 남부 바닷가에서 발견되고 널리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멸종했다.) 헤르의 그 날 새벽 2시 당시의 관심사는 소변과 추위 뿐이었다. 이미 얼어버린 얼음이 너무나 극심한 추위 때문에 더 혹독하게 얼어붙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몸을 뒤틀고 부러진다면 당시 헤르의 고통과 맞먹을 것이다. 오장육부까지 찢어지는 듯한 강추위였다. 그 가운데 터질 것 같은 방광의 압박은 산 너머에 주둔하고 있는 적군보다 더 위협적인 적군이었다. 소변을 보겠다고 바지춤을 내렸다가는 엉덩이가 얼어서 터져 죽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방광의 압박은 출산이 임박한 아이의 머리를 엄마의 뱃속으로 밀어넣는 것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방광이 터져 죽을 것인가 엉덩이가 터져 죽을 것인가. 몰아치는 두 개의 돌풍 사이에서 폭주하는 허리케인처럼 절규하던 헤르는 순간, 이대로 바지에 오줌을 싸면 엉덩이뿐 아니라 허리와 다리 전체까지 얼어붙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초소 밑 십 미터 쯤 떨어진 곳에 버려진 식량 창고가 있었다. 헤르는 굴러 떨어지듯이 초소를 내려가 그 작은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헤르의 소변 줄기가 찢어진 밀가루 포대 한 귀퉁이를 서둘러 적셨다. 훈훈한 김이 뭉게 뭉게 피어올랐고, 머리 위로 구멍난 천정에서는 전등불처럼 밝은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다행히 창고 안은 생각보다 덜 추웠다. 안심하며, 헤르는 자신이 만들어서 어머니 집 앞에 달아놓은 초승달 모양의 풍경이 생각했다. 달빛이 펑펑 쏟아지는 오늘 같은 날이면 오돌 도돌한 무늬가 찍힌 금속 풍경이 보석처럼 빛나곤 했지. 지금 내 소변 웅이에서 허우적대는 저 벌레처럼.

뭐라고, 이 추위에 벌레가?

놀란 헤르는 서둘러 바지를 추스리고 쪼그려 앉아 자신의 오줌 웅덩이를 골똘히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치다가 결국 넘어져서 바지를 적시고 말았다. 헤르의 탄식에 찬 비명이 렘멘요키산을 우렁 우렁 흔들었다.


오이벌레의 생태와 모습, 사용


헤르가 발견한 것은 오이벌레였다. 오이벌레는 연평균 기온이 섭씨 5도를 넘지 않는 서늘한 지역에서, 주로 11월에서 2월 사이 겨울에 발견되는 6cm 가량 곤충이다. 초록빛을 띄는 오이 모양의 몸통을 바닥에 대고 다리로 몸을 밀며 기어다닌다. 한 쌍의 날개가 있지만 사용 빈도가 높지 않아 기능이 좋지 않다. 한 번 날개짓을 해서 2미터 정도를 유연하게 뛰어내리는 정도의 비행만 가능하다. 2월 중순 무렵 알을 낳고 죽는데 알은 6월 쯤 부화해서 5개월 동안 애벌레, 번데기 상태를 거친 뒤 빠르면 10월 말, 늦으면 11월 중순 성체가 된다. 곡류와 흙 속 무기질을 먹고 사는데 옆구리의 작은 틈을 통해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갈색의 엽록소 주머니를 햇빛에 쪼여서 에너지를 소량이나마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덕분에 먹이를 먹지 않고도 3주 이상 산다. 못 먹은지 3주가 지나 굶어 죽으면 몸이 쪼글쪼글하고 노랗게 변하고 강한 짠 맛이 난다. 러시아 북동부 일부 지방에서는 굶어 죽은 오이벌레를 잘게 다져 스프를 끓이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아주 짜서 적은 양으로도 간을 맞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감칠맛을 내서 국물요리를 만들 때 인기가 좋다.

오이벌레는 기어가는 벌레 소리까지 듣는다는 박쥐보다 무려 100배 이상 강한 청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날개와 함께 눈이 퇴화해서 앞을 보지 못하는데도 기민하고 쏜살같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극강의 청력 덕분이다. 우리는 오이 벌레의 간을 이용하면 거의 오이벌레에 가까운 수준의 청력을, 잠시나마 가질 수 있다. 오이벌레의 간이라는 것은 앞서 언급한 엽록소 주머니의 다른 이름인데 진짜 간은 아니지만 오이벌레가 흙에서 섭취한 철분의 색깔 때문에 갈색을 띄고 있다. 색깔 때문에 동물의 간처럼 보여 간이라고 부른다.

헤르의 할머니는 묘약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헤르와 산책을 하거나 잠을 잘 때면 손주의 손을 잡고 묘약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헤르는 그 이야기들에 별 흥미가 없었다. 할머니의 이야기가 끝나기만 기다렸다가 달려나가 나무를 기어 오르고 호수에서 수영을 했다. 하지만 오이벌레를 보는 순간, 할머니가 했던 한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이를 싫어하는 아이도 오이벌레를 손에 올려놓고 고물대는 모양을 보면 오이가 먹고 싶어졌다는, 믿을 수 없던 이야기. 하지만 왜 할머니는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오이벌레가 초록 바다에 물 든 아기조개처럼 말간 빛을 띄고 있다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으셨을까. 달빛 아래에서 오줌에 젖은 몸을 드러내고 있던 오이벌레는 여름 잎사귀로 만든 거울같기도 하고, 얇게 저며서 햇빛에 널어놓은 라임 조각 같기도 했다. 헤르는 오이벌레를 바라보는 동안 귀신에 홀린 것마냥 그 아름다움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젖어서 얼어오는 바지의 감촉마저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졌다. 꿈꾸는 것 같은 헤르의 머릿속에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오이벌레의 사용법이, 숨 쉬러 해면으로 떠오른 아기 돌고래 코 끝처럼 퐁 하고 떠올랐다. 헤르는 자신의 소변 웅덩이에 손을 넣어 벌레를 건져냈다. 그리고 두 손바닥 사이에 벌레를 끼워 비볐다. 벌레의 몸이 잿가루처럼 부서져 떨어지고, 작은 조약돌처럼 반짝이는 오이벌레의 붉은 간만 손바닥에 남았다. 헤르는 두꺼운 옷 사이를 비집고 손을 쑤셔넣어 오이의 간을 자신의 겨드랑이에 끼웠다. 치지직. 타는 소리가 나면서 간이 익었다. 그리고 이내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피부에 스며 들었다.

오이벌레의 사용법은, 보다시피 아주 간단하다. 살아있는 벌레의 몸을 부수고 간만 채취해 겨드랑이에 끼우면 오이벌레의 능력이 인간의 몸에 흡수되고, 발휘된다. 하지만 겨드랑이가 아닌 목 틈이나 사타구니 등 다른 살 틈에 끼우면 간은 녹지 않고 타버리며 사용자의 피부에 화상을 남긴다. 간 크기가 3mm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큰 화상을 입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처는 대부분 덧나서 곪고, 항생제를 이용해서 치료해도 잘 낫지 않는다. 이 상처에 시달리는 동안 보통 높은 열이 동반되고 심한 경우 헛것을 보고 목이 많이 부어 식사조차 어렵다. 두 달이 지나 상처가 아물면 환부에 화 난 사람의 얼굴 모양 흉터가 남는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이것을 마녀의 도장이라고 불렀고, 도장이 찍힌 사람은 한 겨울이라도 찬 물에 몸을 담그고 한 나절 이상 있어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미신이다. 흉터가 아물어 자리를 잡으면 열이나 고름 등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는다.


오이벌레2.jpg 오이벌레



사고


오이벌레의 간이 피부에 스며들면 쨍 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열린다. 오이벌레의 간을 처음 흡수한 헤르는 그 소리가 너무 날카롭고 커서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다. 렘멘요키산이 다시 한 번 비명으로 흔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어디선가 모든 감각을 압도하는, 우뢰와 같은 소리가 헤르의 고막으로 뛰쳐 들어왔다. 짐승의 발구르는 소리 같았다. 최소한 몇 십 마리, 아니 몇 백 마리,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를 낼 만큼 커다란 녀석들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놈들이 만들어낸 땅의 진동이 헤르의 꼬리뼈에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비명에 가까운 거친 숨소리! 녀석들은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아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헤르는 주변에 있던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 간절한 노력은 동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 했다.


"오고 있어! 화가 났어! 다 부술 거야! 오이벌레 덕분에 들을 수 있어! 기어다니는 오이의 간이 내 겨드랑이에 스며들었다고!"


위의 이야기는, 이후 헤르가 한 출판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이 외쳤던 말을 기억나는대로 전달한 것이다. 횡설수설은 오이벌레의 간을 처음 흡수한 사람들에게 흔한 증상인데, 인간의 한 감각이 갑자기, 압도적으로 진화했을 때 사람의 정신이 이를 균형있게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말의 내용과 구성이 쉽게 무너지는 것이다. 당연히 헤르의 동료들은 이 횡설수설을 이해하지 못 했다. 추위 때문에 헤르의 정신이 이상해진 것으로 생각했다. 동료들은 헤르를 밧줄로 묶어 두었다가 교대할 시간이 되자 막사로 끌고 갔다. 분대장은 발버둥치는 헤르를 창고에 가두고 아침에 의사가 올 때까지 아무도 접근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기도 전, 헤르와 동료들이 있는 막사로 '그것들'이 들이 닥쳤다. 이 백 마리가 넘는 무스 떼였다. 창고에 갖힌 헤르의 귀로 건물 벽이 박살나는 소리가 대포소리처럼 사방에서 들려왔다. 국기게양대가 부러져 바닥으로 내리 꽂힐 땐 괴물의 비명같은 찢어지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동료들의 비명도 들렸다. 묶여 있던 헤르 역시 손 쓸 겨를 없이 팔과 갈비뼈가 부러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헤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어렵게 구한 간식을 자주 나누어 주던 다니엘이 다리가 부러진 채 건너편 울부짖고 있었다. 몸이 아픈 헤르를 대신해 보초를 서주던 주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잠을 자고 있던, 너무나 많은 군인들이 크게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헤르의 마음의 무너져 내렸다. 오이벌레에 대해 모두가 잘 알고 있었더라면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오이벌레의 연구, 보급.


제대한 헤르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헬싱키로 가서 오이벌레의 존재와 효과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증명하기 위한 오이벌레 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헤르는 오이벌레를 생활에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할지 연구하고 홍보했다. 그 결과 오이벌레의 간을 통해 스스로를 훈련한 30여 명의 의사들이 몸 속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고 당시로서 정확한 진단이 어렵던 여러 병을 제 때에 발견해서 15년간 12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줬다. 폭발과 붕괴사고 현장에서는 오이벌레의 힘을 이용한 구조대원들이 매몰된 사람의 위치를 정확하고 신속히 찾아내 수 많은 목숨을 구했다. 경찰들은 오이벌레를 이용해서 유괴범이 납치한 아이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폭발물 제거반들은 곤충의 다리에 닿은 쇳소리를 듣고 숨은 지뢰를 안전하게 추적, 제거했다. 무엇보다 2차 대전 말미, 독일군의 손에 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유태인 소년 소녀 261명의 소리를 416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추적하고 당국에 알려서 구출작전을 수행한 일은 헤르가 평생 가장 벅차게 생각한 성과였다. 심지어 헤르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오이벌레의 사육에도 성공했다. 오이벌레의 연구와 활용의 황금기로 불린 1978년에는 세계 27개국, 87개 사육장을 설립, 운영되며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연구 활동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오이벌레의 연구에 너무나 심취해 있던 탓일까. 헤르는 오이벌레를 통해 사람의 마음의 소리마저 들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하며 금지된 연구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이를 감지한 묘약협회 산하 묘약 윤리위원회는 1981년, 헤르의 묘약 연구원 자격증을 박탈당하고 오이벌레와의 영구적인 격리조치를 선고했다.

낙심힌 헤르는 얼마 가지 않아 지병인 당뇨의 합병증이 심화돼 1982년 1월, 한 요양원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헤르가 갑자기 왜 그런 경솔한 결심으로 자신의 모든 경력을 망치고 그토록 사랑하던 오이벌레와도 생이별을 해야 했는지는 헤르를 떠내보낸 지금까지 큰 안타까움이고 의문이다. 어쨌든 사람들의 삶에 큰 희망과 행복을 안겨준 연구원으로서는 정말 딱하고 쓸쓸한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27개국에 걸쳐 87개까지 사육장이 설립될 정도로 대규모 활동이 진행된 오이벌레 사업에 대해 여러분은 왜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일까. 그것은 헤르가 죽은 82년 이후, 사육장의 오이벌레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빠르게 개체수가 감소해서 1985년, 오이재단이 사업을 전면 철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왜 오이벌레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것일까. 그리고 이후 시도한 오이벌레의 사육에 왜 아무도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일까. 몇 몇 연구원들은 사육장의 오이벌레들이 헤르를 주인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헤르와 함께 사라진 것이며, 오이벌레의 주인이 될 누군가가 생긴다면 오이벌레 사육에 다시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많은 연구원들이 지지하고 있는 가설이지만 이를 증명하는 연구를 수행하기에 충분한 숫자의 오이벌레를 이제까지 산 채로 확보할 수 없던 바, 아직까지도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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