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엘리엇(1888–1965)은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 중 한 명이지만, 그가 누구보다 미국적 뿌리를 지닌 인물이었다는 사실은 자주 잊히곤 한다. 그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나 16세까지 그곳에서 자랐고, 이후 하버드에서 수학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 시민이 되었다. 그러나 엘리엇의 시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이미지들—강물, 황무지, 도시의 소음과 고독—그 많은 것들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의 기억에서 출발했음을 놓쳐선 안 된다.
세인트루이스는 미시시피 강을 끼고 발전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어린 엘리엇은 강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이는 그의 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의 이미지로 이어졌다.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에 등장하는 “I will show you fear in a handful of dust.”라는 상징적인 구절 역시, 황량한 강 주변 풍경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19세기 말의 세인트루이스는 독일, 아일랜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였다. 엘리엇은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다문화적 감각을 익혔다. 그의 시에는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등장하고, 종교적·철학적 레퍼런스가 풍부하게 배치된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된 정서적 뿌리였다.
엘리엇의 가문은 엄격한 유니테리언 전통을 따랐다. 신앙과 도덕, 학문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는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 대학교 설립에 기여한 교육자였고, 이러한 가정환경은 엘리엇의 작품 속에서 존재의 본질, 죄와 구원, 시간과 영원의 주제를 탐구하게 만들었다. 후기 대표작인 『사중주』(Four Quartets, 1943)는 이러한 종교적 사유의 정점에 놓인 작품이다.
엘리엇은 산업화된 세인트루이스의 풍경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연기와 소음, 분주한 상업의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인간 소외.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1915)와 『황무지』는 이러한 도시의 감각과 불안, 고독을 밀도 높게 담고 있다. 세인트루이스의 거리는 결국 그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도시의 원형이었다.
비록 엘리엇은 영국에서 생을 마쳤고, 많은 이들이 그를 ‘영국 시인’으로 기억하지만, 그의 문학적 DNA는 세인트루이스의 자연과 사람들, 다문화성과 도덕적 훈육, 그리고 산업화된 도시의 풍경에서 자양분을 얻었다. 그는 이 미국 중서부의 도시를 떠났지만, 시인의 내면에는 여전히 미시시피 강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