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줄 알았던 장마가 다시 돌아와서 전국을 흠뻑 적시고, 무너뜨리고 휩쓸어가고 나니 숨 막히는 더위가 찾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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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에는 남쪽 저 아래의 나라에 잠깐 머물렀어요. 머리가 띵해지는 더위를 각오하고 돌아온 한국이 생각보다 선선해서 놀랐지 뭐에요. 덥지 않은 날씨는 자비없는 물난리가 준 마지막 말미였는지 비가 잔뜩 쏟아지고 사람들이 다쳤지 뭐에요.
저는 항상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장마철은 빨래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참 행복한 계절이었어요. 그치만 어른이 되어 마주한 장마는 곧잘 잔인해지기 일쑤이더군요. 반지하에 사는 이의 머리맡을, 발끝을, 더러는 머리끝까지를 푹 잠기게 하고, 산 한 구석이 아랫 마을로, 도로로, 밭으로, 집으로 무너져 내리게 해요. 지하철을 끊기게도 하고, 과일을 떨어뜨리고 벼를 넘어뜨리기도 해요. 수해가 다녀간 뒤, 가을에 장바구니를 채울 생각에 막막해지는 사람들도 많겠죠. 별다른 방법이 없는 이들에게 특히 잔인해지는게 너무하다 싶더라구요.
천진하게 녹진한 공기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장마철을 기다린다고 말하기에는 사회의 너무 많은 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을까요. 좋으면 좋다, 말할 수 있는데도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금새 비가 그치고 해가 떴어요.
오랜만에 하늘을 밝히는 해는 못 본 사이에 많이 뜨거워져 있었어요. 거리낄 것 없이 사람들의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고, 잠시 숨 돌릴 조그마한 그늘을 고집스레 더 좁혀나가는 여름이에요.
올해는 계절의 아름다움과 조금씩 달라지는 하루하루에 기민해지고 싶었어요. 7월 중순까지만 해도 계절이 농익어가는 모습을 목도하는 일, 색다른 빛깔과 냄새로 계절을 알아보는 일에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올해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치만 7월 말의 더위는 왜 이렇게 잔인한가요.
더위를 피할 길이 없는 이들이 앉은 채로 영원히 굳어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를 떠받치는 이들이 휘청이고 있어요. 이 더위가 잔인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숨통을 조이는 위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창 밖으로 내다볼 여름의 빛깔이기 때문이겠지요.
창 밖의 찬란함을 함부로 찬미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일거에요.
애써 꺼내보려는 천진함이 유난히 껄끄러운 한여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