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어느 밤 바람에 실려 창문 틈으로 들어온다.

by 언제나 여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서서히 멀어지고, 우리는 그 반질거리는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뜨거움에 한숨을 내뱉었다가도, 금세 그 선명함과 싱그러움을 그리워할 것임을 알았기에 저는 여름의 더위를 그다지 저주하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햇빛 아래서도 목이 타지 않는 가을이 오니 기분이 참 좋아요.


아침나절 청명한 공기에 가을인가? 싶었다가도 해가 정수리에 가까워지면 아, 아직 멀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참을 인을 새기지 않았나요? 그러다가 열어둔 창문 사이로 문득 선선한 바람이 들어올 때, 그때서야 가을을 인정하게 됩니다. 해가 떨어지고 남은 자리에, 가을이 들어차기 시작하더군요.


가을은 밤에 오는 계절인가요.


밤산책이 무척 즐거워지는 계절입니다. 낮에는 맑은 하늘에 설레기 시작하는 계절이에요. 여름 내 밤꽃 냄새를 풍기며 자욱하던 밤나무들이 가시를 송송 돋우기 시작할겁니다. 무거워진 가지를 드리우며 밤송이가 터질 날의 손꼽아 기다리겠지요.


어린 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이 있습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가장 통통하고 실한 밤을 골라 쪄주셨어요. 뜨거운 밤에 손을 댈라치면 만류하시며, 당신께서 껍질을 벗겨주시겠노라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커다란 밤을 칼로 깎아 그 포슬하고 따끈한 알밤을 입에 넣어주셨어요. 입 안 가득차는 뜨겁고 달콤한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던 저는 가을이 될라치면 항상 알밤을 입에 달고 살았답니다.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은 그 알밤이 참으로 뜨거웠다는 것, 그리고 밤 껍질은 사과 껍질처럼 쉬이 벗겨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반으로 갈라 티스푼으로 파먹어도 될 그것을 구태여 과도로 벗겨내어 입에 넣어주신 어머니의 마음이 포슬한 밤보다도 목을 메이게 하는 것인줄은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햇밤을 사다가 보늬밤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삶고 벗기고 끓이고 식혀 숙성해야 한다는 그 밤에 제 마음도 담아다가 예쁜 병에 넣어드려야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선선해지는 이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첫 주에 설레는 마음으로 햇밤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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