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고인 물에 대한 단상〉

흐르지 못한 것들의 뚝심 혹은 독성

by 비고란


우리는 말한다.
“야, 너 고인물 됐냐?”
“저 형은 고여서 썩었지.”

하지만, 물이 고인다고 다 썩는 건 아니다..
고이는 방식과, 고인 채로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그건 연못이 될 수도, 오물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1. [고인물]의 사전적 의미와 어원 해부

고인 물= 괸 물

흐르지 않고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물.

(비유) 변화가 없이 정체되어 발전이 없는 사람이나 집단.
→ 요즘엔 이 말이 거의 “꼰대”의 대체어처럼 쓰이곤 하지.

한자어 없음. 순수 한국어 표현.

어근:

‘고이다’: 물 따위가 한 곳에 머무름.

'괴다'와 통한다. (괴다 = 차곡차곡 쌓여 머무르다.)

고인돌: 선사시대 무덤. 말 그대로 오래된 게 고여 있다.(한자로 많이 알고 있지만, 고인돌 즉 돌로 괴어놓은 선사시대의 무덤. =괸돌


즉, 고인 물은 원래 '축적'과 '저장'을 뜻했으며,
'썩음'은 후대의 의미 확장이겠다.
고인 물은 원래 지혜의 저장소였다고...

2. “고인 물은 썩는다?”

→ 썩는 게 아니라, 덜렁 열려 있던 뚜껑이 닫혔을 뿐이다.

물은 움직이지 않으면 산소를 잃고,
산소를 잃으면 미생물이 왕국을 세운다.
그래서 사람도 산소를 잃으면 '기분이 썩는다.'

하지만 그 물이 깊으면 깊을수록,
쉽게 썩지 않는다. 사실상 썩는다는 표현은 습지에 가깝지만, 그마저도 옳은 표현은 아니란다.

깊은 고인 물은 연못이 되지만,
얕은 고인물은 개구리 왕국이 된다.
지혜와 오만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교훈.

3. [현대적 쓰임] – "고였네, 고였어!"

→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판, 직장 생태계 등

“이 판은 고인물들만 살아남아.” (묘하게 고레벨의 어감과 같아서인지 자주 쓰임)

“신입이 자리 못 잡는 건 다 고인물 탓이지.” (묘하게 삼가 고인의 어감과 같아서인지 산자의 반대말 느낌으로도 쓰임.)

고인물 특이점: 말 많고, 고칠 생각 없음.

사실상 고인 물이 문제인 게 아니라
고인 줄도 모르고 계속 증발 중인 인간들이 문제다.

즉, 자기 영역에 우쭐해 있으면서
흐르는 척, 소통하는 척하는 척척박사형 꼰대들.(난가?)

4. 고인 물의 철학 – 축적의 가치 vs. 갇힘의 독성

고인물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고인 물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혜 저장소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만의 세계에만 써먹으려는 순간,
그건 지식이 아니라 ‘자뻑’이 된다.

고인 물은 두 종류다.

마셔도 되는 고인 물 (깊고 투명한 샘물)

손대면 안 되는 고인물 (묘하게 끈적한 회식자리 상석쯤?)

5. "고인물은 고인돌이 되고,

고인돌은 결국 문화재가 된다?"

“고여 있다 = 나쁘다”는 단순 공식은 틀렸다.

문제는 흐르지 않음이 아니라, 흐를 줄 모름.

물은 정화되거나, 증발하거나, 썩는다.
사람도 그렇다.

너무 오래 고여 있으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먼저 썩는다.(난가? 2)

°비고란에 붙이는 포스트잇

“고인 물도 때로는 거울이 된다.
흘러가지 못해 스스로를 계속 비추는…”

“나는 고인 물일지언정,
썩지 않는 물,
숨 고르는 물,
잠시 세상을 비추다 다시 흘러갈 물이 되고 싶다.”


고인물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썩느냐, 샘이 되느냐는 태도와 용도에 따라 나뉜다.
그러니 묻자.
“당신은 지금, 어떤 고임을 살아가고 있는가?”

백두산의 천지연이나 사하라의 오아시스 일지도.....


당신은 지금, 어떤 고임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 고임 속에서, 누구를 비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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