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헛소리에 대한 단상>

존재를 비껴간 말의 기억

by 비고란




○ 헛(虛)의 사전적 의미

'헛’은 단독보다는 접두어로 더 많이 쓰이는 말이다.

헛소리 : 아무 쓸모없는 말, 의미 없는 말

헛고생 : 헛되이 한 고생

헛기침 : 일부러 내는 기침

헛똑똑이 : 쓸데없이 아는 체하는 사람

헛걸음, 헛물켜기, 헛디디다...
우리는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말이 먼저 미끄러진다.
감정이 준비되지 않은 채 튀어나온 말,
입에서 나온 순간부터 후회되는 말,
웃자고 한 말인데 진심이 섞인 말.

그 모든 말의 이름은, 헛소리다.



1. 헛사랑 — 없었던 것처럼 남겨지는 감정

헛사랑은 사랑이 아닌 게 아닌
너무 뜨거웠거나, 너무 혼자였거나,
혹은 너무 일찍 시작했거나 너무 늦게 고백한 감정이 아닐까..

헛사랑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사랑의 타이밍을 놓친 감정의 사체’이기에 헛소리로 귀결된다.

사람들은 헛사랑을 부끄러워하지만,
헛사랑이야말로 진짜 철학자의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헛사랑은,
“사랑이 아니길 바랐던 사랑”이었을 테니 말이다.



2. 헛수고 — 노력과 결과의 이혼장

헛수고는, 노력과 결과가 따로 노는 이혼상태다.
노력은 있었고, 땀은 흘렸고, 마음은 남았는데
결과가 도통 대꾸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헛수고라고 부르는가 보다.
하지만 헛수고는,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자랑거리다.
헛수고가 없는 사람은 결국 감정의 무단횡단자일뿐이다.

헛수고는 실패가 아니라,
“기억에 남을만한 몸짓”으로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괜한 소리, 헛소리로 귀결한다. 결과는 사라졌지만, 마음은 그때 그곳에 아직 있는데도 말이지.



3. 헛된 희망 — 살아야 했던 날의 종이배

사람들이 가장 조롱하는 말인 “헛된 희망 품지 마.”
하지만 헛된 희망의 모둠이 고귀한 결말을 맺듯이
우린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거다.
헛된 희망은 “가짜 위로”가 아니라
“진짜 절망을 이긴 자의 미끼”다.


물에 젖어 찢어진 희망 종이배도, 헛디뎌 밟은 애완견의 개소리도..
한때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진심의 절단면 갈리는 소리들"이 아닐까?.

헛소리는 바람에 나부끼듯 속 빈 체 들리나, 결코 무의미하진 않다.
모든 헛소리는 “지금은 이해받지 못한 말”이다.

헛사랑은 지나가버렸고,

헛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며,

헛된 희망은 결국 배신당했지만

그 헛들의 잔해 속에 우리는 살아 있었다.
헛소리를 쏟아내던 나, 그 말들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렇게 말이 되는 중이다.

나의 헛소리에 대한 단상은 이렇다.
말이 본심보다 앞서가 버려, 의미가 미끄러진 상태다. 감정은 앞서가고, 말은 따라가다 발이 걸린다.
그게 헛소리다.

그나저나.



"난 또 왠 아니 땐 굴뚝에 헛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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