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다정함과 내 두려움 사이

21.Ha

by JE


걷는 길, 땀이 식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조금 살아있다는 걸 느꼈다.
학원 수업을 마친 뒤, 나는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집 가고 있지.”
“택시 불러줄까?”
“아니, 그냥 걷고 싶어서…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야.”

걷는다는 건 내 마음속 생각들을 하나씩 풀어내는 일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발끝에 힘을 주며 조용히 되뇌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는 늘 “용돈 줄까?”라고 물었고,
나는 “왜 자꾸 그러는데 ㅋㅋ 받으면 왠지 미안해져...”라며 거절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음...” 하고 대답했다.
그 침묵 뒤에 숨겨진 마음을 나는 느끼려 애썼다.
혹시 그가 서운해하거나,
내가 그의 마음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받는 일이 두려웠다.
처음엔 고마움이었고,
그다음엔 죄책감이었으며,
이제는 그 모든 감정을 넘어
‘내가 이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 자신조차 싫어질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그의 도움을 거절했다.
카드가 없으면, 급하게 현금을 빌려서라도
그에게 바로 돈을 보내곤 했다.
그가 내준 밥값이며, 교통비며…
마음 한편에 늘 빚진 듯한 무거움이 자리했다.

“너니까 받는 거야. 아무한테나 안 받아.”
내 안에서 수없이 되뇌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는 건 늘 어려웠다.

결국,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받으면 미안해질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받는 것에 익숙해질까 봐 무서워.”

그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했다.
“난 괜찮아. 누난 분명 다르니까.
그래도 만약 그렇게 생각하게 돼도 , 너니까 괜찮아.”

그 말은 너무 다정해서, 나는 더 미안해졌다.

나는 나 자신을 돌아봤다.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려고,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속했다.

무너질까 봐,
흘러넘칠까 봐,
조금만 틈이 생기면 다시 단단히 조여 맸다.

나는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조금씩 무너진 채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걸.

그럼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걸음마다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작은 불빛을 믿기로 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그 빛을,
오늘도 나는 걸으며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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