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Ha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랑 만나면 힘들어. 사귀면 더 힘들걸. 진짜로, 다른 사람 만나는 게 너한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는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했다.
"괜찮아. 힘든 거, 나 감당할 수 있어. 네가 어떤 사람이든, 난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또 말했다.
"나, 전 남자 친구만큼 너 못 사랑할 수도 있어. 그게 분명히 너한테는 서운할 거야.
그리고… 나 아직도 그 사람 그리워."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도 괜찮아. 내가 잊게 해 줄게.
서운한 날이 있어도, 사랑할 거야. 내가 잘할게."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그를 밀어내면서도,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고
그에게 대하는 태도와 말투에 가시가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애써 무심한 척, 타인처럼 굴었지만
그는 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려고
늘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지.
난 따듯하게 불어오는 너를 밀어내면서도 그 따듯함에 물들어 가고 있었고 그는 그런 내 모습도 알아차렸던 것 같다
"이 정도면 나한테 넘어온 거라니까?"
그가 장난스레 물었을 때
나는 잠시 시선을 피했고,
창밖을 한 번 바라보다가
조금 웃으며, 흘리듯 말했다.
"음… 내가 생각해도 좀 넘어간 거 같긴 하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오래 맴돌았다.
쉽게 꺼낸 말이었지만,
사실은 그 순간 나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만든 온기가 내 안에 이미 번져 있다는 걸.
그는 눈이 동그래져서 놀란 얼굴로 웃었다.
"진짜? 어? 진짜지?"
그 표정은 오래 기다린 끝에 받는 선물처럼 빛났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걔 너 진짜 많이 힘들어하더라."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친구가 너 힘들어한다는데, 왜 힘들었어?"
그는 대답했다.
" 누나가 헷갈리게 하는 거 같아서... 계속 기대해도 되나 싶어서.
근데 방금 그 대답 듣고 안 힘들어졌어.
지금은 너무 좋아."
그렇게 나는 6개월의 연애와
6개월의 미련을 지나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도는 것만 같았던 감정들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고,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던 내가
이제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딛고 있었다.
그와의 시작은 확신이 아니라
흔들림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건 항상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눈빛과 말들이었다.
사랑은 때로 무겁고, 두렵고,
지나간 이름이 마음에 남아 흔들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조금은 덜 외롭게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완전히 담담하지 않다.
지나간 그 사람은 내 마음 한 구석에 평생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은 마치 오래된 앨범에 한 장면처럼 시간이 흘러도 가끔 펼쳐보는 기억으로 평생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새로운 계절 앞에 서 있고,
그 계절은 나에게 말하고 있다.
다 괜찮다고.
이번에는 천천히, 네가 사랑받는 시간을 살아보라고.
그렇게 나는 2025 여름 작년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계절, 맑고 깨끗한 하늘을 바라보며 새로운 계절을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