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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그웨이, 그들이 걸었던 그 길위에서

알래스카 6

by 윤슬 걷다


도슨 시티를 향해 수만 명이 떠났던 출발점, 그곳이 바로 스캐그웨이였다.
금의 유혹을 좇던 사람들의 행렬이 사라진 지 한 세기가 지났지만,
그 바람은 여전히 산 사이로 불고 있었다.

그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푹 자고 눈을 떴을 때는 아침 여덟 시.
좀처럼 늦잠을 자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하선을 해,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빙하 헬기 투어장으로 향했다.

배에서 내려 마을로 가다 물개가 수영하고 있는 걸 보고 한장 찰칵



헬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그 광활한 빙하 위를 걸을 생각을 하니 설렘이 일었다.
이 여행의 하일라이트,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헬기장에 도착하자 직원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업데이트된 뉴스가 있습니다.”

짧은 침묵 뒤에 들은 말은,
‘날씨 때문에 투어가 취소되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텅 비었다.
어제부터 이어진 비와 바람 때문이라지만,
이 정도 날씨에도 헬기는 뜨지 못하는 걸까?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헬기 사진만 몇장 찍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우리는 부랴부랴 다른 투어를 찾아 당일 예약을 했다.

선택한 건 Yukonner + Puppy Experience.
유콘으로 향하는 길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로 옆으로는 푸른 호수와 눈 덮인 산맥이 이어지고,
가끔 나타나는 작은 마을이 풍경을 더 깊게 만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이래서 알래스카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실망스러웠다.
‘썰매견 체험’이라더니,
우리가 탄 건 엔진으로 움직이는 AWD 차량이었고
개들은 그저 앞에서 달리기만 했다.
그야말로 연출된 보여주기 '쇼'였다.

개들을 좋아하는 토니는 강아지를 안아들고 쓰다듬으며 즐거워 한다. 나는 이미 실망스러운 마음이 커서 강아지도 풍경도 별로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이어진 ‘골드 패닝’ 체험도 마찬가지였다.
모래 속에는 이미 작은 금 조각이 심어져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찾는 ‘연습’을 하는 셈이었다.
물에 접시를 담궈 흔들어도,
그 반짝임이 주는 설렘은 진짜가 아니었다.

순간, 눈 덮인 봉우리도
끝없이 펼쳐진 도로도 다 시들해졌다.
아름답다고 느꼈던 풍경조차
마치 무대 세트처럼 보였다.

나는 알래스카까지
그저 몇 개의 눈 덮인 산을 보러 온 게 아니었다.
기대했던 것은,
빙하 위의 찬 공기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아이스버그의 숨결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대신 내게 남은 건
‘관광’과 ‘체험’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이상한 허무감이었다.

문득, 어제 읽었던 그 금광 이야기 속 사람들이 떠올랐다.
도슨 시티를 향해 죽음 같은 설산을 넘던 그들.
그들도 어쩌면 나처럼,
무언가 진짜를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금을 쥐었을 때,
그것이 진짜였을까?

나는 잠시 스캐그웨이의 기차역 쪽을 바라보았다.
화이트패스 열차가 천천히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그 길이 바로 그들이 걸었던 길.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오늘의 나 역시,
그들의 발자국 위에서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진짜는 어디에 있을까.’


다음 편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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