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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풍화검 01화

신묘한 몸놀림

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서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꽃잎이 표표히 날렸다.


“이제 진짜 봄인 걸. 항상 오늘만 같으면 좋겠다.”


이청풍(李靑風)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여졌다. 숨을 깊게 쉬었다. 상쾌했다. 자기도 모르게 휘파람을 뽑아본다.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다.


십팔기(十八技) 도장에 들어섰다.


한낮인데도 창문이 짙푸른 셀로판지로 덮여 있어서 도장은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수상하리 만큼 아주 고요했다. 3년째 다닌 도장이었건만 오늘은 무언지 낯선 기운이 흘렀다. 그때 구석 한편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누군가 검법을 펼치고 있구나.’


딱 한 칸 열린 창문 사이로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검광을 만들어 냈다.


‘항룡(亢龍) 선생님!’


청풍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선생이 진검을 빼어 들고 검법을 시전 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더 놀란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바로 그 검법 때문이렷다!


그날따라 하얀 도복을 차려입은 선생이 검을 신속히 베어 나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깊이 찌르고, 펄쩍 뛰어 물러서는가 하면 몸을 낮춰 스스슥 다가오는 것이다.

검과 사람이 하나로 움직인다.

무협지 용어로 ‘신검합일’ 이라던가!


눈앞에 펼쳐진 검 초식들은 필시 귀신이 아니고서는 감히 따라 하지 못할 경지임에 틀림없었다.

물리적 속도와 한계를 뛰어넘은 듯 빠르되 부드럽고, 묵직하되 경쾌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던 검이 별안간 직선으로 쏘아 들어가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소요유(逍遙遊)’ 초식 같았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선생의 몸놀림이 신묘할 뿐이다.


만약에 어느 백돌이 주말골퍼가 타이거 우즈 스윙을 필드에서 처음으로 직관했다고 치자.

티박스에 들어선 우즈. 근육질 몸매, 흔들림 없는 탄탄한 셋업, 날카로운 눈빛, 목표를 꿰뚫어 본 뒤의 강력한 스윙. 그리고 시속 180 마일의 속도로 날아가는 골프볼의 비구선을 바라본다면∙∙∙∙∙∙.


이청풍이 본 항룡 선생의 검술과 백돌이 골퍼가 본 타이거 우즈 스윙이 비슷하지 않겠는가. 몸을 쓰는 기예(技藝)로 따져 동서고금을 통틀어 달리 짝이 없을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


청풍은 그 짧은 순간에 깊이 깨달았다.

진정한 무인(武人)의 움직임이 어떤 것인지.

평생 공력을 쌓으면 그렇게도 기묘한 신법(身法)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신. 출. 귀. 몰.

검이 움직이면 검화가 피었다.


항룡 선생이 어느새 검을 갈무리하고 청풍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예의 그 인자한 웃음이 종심(從心)을 넘긴 선생의 얼굴에 배어 났다.


“풍아, 배워보겠느냐!”

당시 청풍은 선생 말씀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한 사람만 택해 전수한다는 풍화검결(風化劍訣)을 배우게 될 운명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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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