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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풍화검 04화

까까머리 학창시절

무림고수 K

by 무림고수 K

청풍은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춘천에서 나고 자랐다.


분지 지형 한 중간에 터잡은 자그마한 도시. 인구 이십만 남짓한 그곳을 휘감는 호수와 거기서 철에 따라 짙게 또는 옅게 피어나는 안개가 많다고 해서 외지 사람들이 흔히 ‘호반의 도시’라고 불렀는데, 정작 그곳 사람들은 별반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곳 자연은 태곳적 모습 그대로 사람들 삶 속에 깊게 녹아들었을 뿐이다.


산을 닮아서 둥글둥글 순하고, 물을 따라서 싱글벙글 유연한 사람이 많았다. 크게 욕심 내는 법 없이 만족하며 살았다.


겨울바람은 매서워 호수를 온통 꽁꽁 얼려 놓았으나 봄바람이 불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천으로 꽃이 피었으니 저마다 혹독함을 견뎌내는 힘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순진무구의 성정을 가진 이들이 많이 나왔다.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린 큰 문인들이 어른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들은 '에헴~'의 태도보다는 꼬맹이들이 돌부리라도 차 넘어지면 노구에도 바삐 다가가 일으켜 세우고 ‘괜찮으냐~’ 무릎을 털어주는, 격식에 앞서 인정을 차리는 어른들이었다.


창의적 작품 활동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미술가들 또한 줄줄이 배출됐다. 본디 관해난수(官海難水)인 법이어서 그곳에서는 어려서 그림 좀 그린다고 행세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되려 그것이 그들만이 창조적 파괴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오마주의 전통 기법을 버리는 대신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필법을 결국에는 이뤄 내고야 만 것이다.


게다가 요사이까지 월드 클래스의 스포츠 스타도 손가락으로 다 꼽기 힘들 만큼 나왔다. 자연 속에서 뛰고 놀던 성장 과정이 체력을 기르고 창의적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터였다.


만약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고 자란 곳에서의 삶이 결국은 사람을 만들고 그가 갈 길을 정해주는 것’ 바로 그것 인지도 모른다.


한학에 조예가 깊은 할아버지가 당시의 고명한 작명법은 몽땅 내다 버리고 아예 신식으로다가 ‘산처럼 푸르게’ 청(靑), 그러면서도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라’고 풍(風)이라 이름 지어서인지 청풍은 어려서부터 들로 산으로 쏘아 다니길 좋아해서 저녁놀이 붉게 물들 때쯤 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청풍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비범함을 나타냈다. 그것도 완전히 이질적인 두 가지 분야에서 또래의 주총을 불허할 만큼 특출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교정의 잔디밭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내려진 시제(詩題)가 가을운동회.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고 또다시 쓰기를 반복하던 청풍이 ‘땡. 땡. 땡.’ 종소리에 후다닥 공책을 제출했는데, 쉬는 시간을 지나 교실에 들어가 보니 선생님이 그의 시를 칠판에 빼곡히 적고 있는 것이다.


‘푸른 하늘 저쪽 산 구석에는 우리들의 웃음으로 가득 …… 하늘과 맞닿은 산꼭대기 곡선은 신이 붓으로 그려낸 듯’ 운운하는 시였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은 “아주아주 뛰어난 시”라면서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했다.

6학년때는 국어 숙제로 제출한 시가 전국적으로 발행되는 큰 신문이 주최한 대회에서 입선해 지면에 실렸다. 글쓰기 재주가 날로 늘었다. 시와 수필을 막론하고 썼다 하면 평가에서 만점을 받거나 상을 탔다.


청풍은 쓰기 위해 책을 읽었다. 책을 보고 생각이 많은 아이로 자라났다. 들과 산으로 쏘다니지 않을 때에는 도서관에 처박혔다. 또 다른 자유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들춰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못 갈 곳이 없고 불가능한 일도 없었다. 세상은 크고도 넓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험이 목전이 아니라면 점심을 후다닥 먹고 나면 잠시라도 도서관에 들르곤 했다. 그가 좋아하는 자리는 통유리창 밖으로 산이 멀리 내다 보이고 발아래로는 잔디밭이 펼쳐진 2인석이었다. 햇살이 와글와글 쏟아져 들어오고 빗소리가 쏴아악 유리창에 빗금을 치고 눈꽃이 나풀거리며 날리는 자리였다.


그곳에서 손이 닿는 대로 문학과 역사와 철학 책을 찾아서 꿈꾸듯 읽고는 하였다. 글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서정과 문장에 먼저 반하고, 앞서 깨달은 이들이 일러주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한없이 놀라울 따름이었으며, 세계와 사람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는 화법과 사고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으므로 항시 가슴이 벅차서 도서관을 나오는 것이었다.


도서관 책장에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꽂아 두고서는 다음날 아니면 그다음 날 도서관을 다시 찾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청풍이 붙박이로 앉는 자리에 누군가 낙서를 했는지 엄지손톱 만한 파란색 하트가 그려져 있다. “왜 파란색일까” 궁금은 하였으나 “그게 무어 대단한 이유가 있겠나” 피식 웃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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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