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농사짓는 회사에 다니는 것 같아요. 아침 일찍 출근하는 ‘농업적 근면성’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드네요.”
예전에 중견기업에 다니는 관리자급 경력사원이 이직 상담 과정에서 푸념하듯 내뱉은 말입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출근하는 것이 육체적으로 피곤하여 남들처럼 정상적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회사로 이직을 희망한다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근면하고 성실한 태도는 직장인의 필수 덕목입니다. 하지만 ‘농업적 근면성’이라는 말은 다른 뜻을 품고 있습니다. ‘휴식 없이 일만 열심히 한다’, ‘실속 없이 부지런하다’는 냉소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농사를 짓는 농부의 일상에 빗대어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문화를 비판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MZ 세대들이 힘들게 입사한 회사를 몇 년 만에 퇴사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나약하고 철없는 세대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LG경영연구원의 곽연선 연구원이 펴낸 책 『번아웃 세대』에서 MZ세대의 조기 번아웃이 단순히 개인의 특성이나 잘못이 아니며 집단적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MZ세대가 번아웃 세대가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MZ세대는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 속에서 자라고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이미 많은 학업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학업 번아웃’의 상태에서 회사에 입사하니 불과 몇 년 만에 ‘업무 번아웃’에 빠지고 맙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무려 16년 이상 몸과 마음이 잿더미처럼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외에도 MZ세대에게 번아웃이 빨리 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좁은 취업문과 양질의 일자리 부족, 자산 양극화로 인한 부의 불평등 기성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등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중심 세대가 달라졌습니다. AI 시대에 MZ 세대, 즉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드는 밀레니얼 세대와 20대에서 30대로 들어서는 Z 세대가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개인의 여가생활을 보장하는 워라밸을 중시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주 4.5일제나 주 4일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기업들이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조직 문화의 일부로서 근무시간과 근무방식은 점점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철저하고 계획적이다. 현대는 저돌적이고 뚝심이 있다. LG는 전문성을 중시하고 민주적이다. 포스코는 개척 정신과 강한 현장이 강점이다”
흔히 사람들은 우리나라 주요 그룹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차이는 기업마다 조직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기업문화는 기업과 기업을 구분하는 실체로서 그 기업의 고유한 특성을 의미합니다. 그 기업문화를 결정짓는 조직문화는 구성원들에게 공유된 가치, 규범, 사고방식, 행동양식 등을 말하며 구성원들의 직무 만족, 애사심, 일체감, 조직 몰입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근태 경영컨설턴트는 그의 책 「무엇이 최고의 조직을 만드는가」에서 조직문화의 유형을 7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순응저항형 조직입니다. 겉으로는 순응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저항하는 조직으로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조직 유형으로 표면적으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며 변화하기 가장 어려운 조직입니다.
둘째, 자유방임형 조직입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걸 하는 조직으로 원칙이 없습니다. 대학 동아리가 대표적입니다. 자유롭긴 하지만 룰이 없고 리더십 부재로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셋째, 과다성장형 조직입니다. 너무 급격하게 성장한 조직으로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빠른 성장으로 시스템이 조직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몸집은 큰데 머리가 작은 청소년과 같습니다.
넷째, 과도관리형 조직입니다. 한마디로 관리가 과한 조직입니다. 대기업에 이런 조직이 많습니다. 현장보다 관리부서의 힘이 세고 목표보다는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섯째, 민첩대응형 조직입니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성과를 거둠으로써 경쟁자를 감탄하게 만들지만, 그다음 순간 어린이처럼 미숙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적합한 프로세스가 자리 잡는다면 안정적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 일사불란형 조직입니다. 기름칠이 잘 된 기계처럼 순조롭게 돌아갑니다. 모든 직원이 자기 역할을 잘 알고 있고 부지런히 일해 전체적으로 유연하고 일관성이 있습니다. 위계질서가 있고 엄격히 통제되는 경영 모델에서 운영되며 예측하지 못한 변화에는 잘 대처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일곱째, 유연적응형 조직입니다. 일관성 있고 집중된 조직 모델을 갖추고 있어 적응력이 빠르며 실패도 빨리 극복합니다. 건강한 조직이지만 지속적 노력 없이는 유지하기 어려운 조직이기도 합니다.
직장인은 새로운 직장을 선택할 때 자신에게 맞는 조직문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근무시간과 워라밸만 따지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를 두루 살펴 새 회사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조직문화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바뀌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좋은 문화, 나쁜 문화가 따로 없습니다. 단지 업의 특성에 적합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