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녀, 제인 마플

성수 씨의 만물상점 #12

by 김성수


어서 오세요, 성수 씨의 만물상점입니다.


가끔 손님들께서 묻곤 하십니다. "주인장이 읽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라고요. 제 머릿속 진열장에는 수많은 멋진 이름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단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가게 가장 안쪽, 비밀스러운 서랍을 열어 이분의 이름을 꺼낼 겁니다.


바로, 추리소설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고, 가장 사랑스러운 히로인. 제인 마플(Jane Marple) 양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지요. 오늘은 제 마음속 가장 빛나는 자리에 모셔둔, 저의 영원한 '최애' 탐정에 대한 뜨거운 팬심을 조금 풀어놓을까 합니다.



미스 마플을 처음 보신 분들은 아마 고개를 갸웃하실지도 모릅니다. 영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 '세인트 메리 미드'에 사는, 그저 평범하고 수다스러운 독신 노부인이거든요. 그녀의 일상은 너무나 잔잔합니다. 늘 손에서 놓지 않는 뜨개질거리, 애지중지 가꾸는 제라늄 정원, 그리고 이웃들과 차를 마시며 나누는 시시콜콜한 마을의 가십(험담)이 유일한 낙처럼 보이죠.


하지만,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 그 포근한 양털 뭉치와 향긋한 홍차 김 서린 온화한 미소 뒤에는, 그 어떤 명탐정보다 날카로운 '시퍼런 칼날'이 숨겨져 있거든요.


셜록 홈즈가 천재적인 두뇌와 과학적 추리로 사건을 해결한다면, 미스 마플은 평생 시골 마을의 안락의자에 앉아 관찰해 온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 하나만으로 모든 수수께끼를 관통합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런던 한복판이나 여기 세인트 메리 미드나 똑같단다."


그녀에게 복잡하고 거대한 살인 사건의 용의자는, 20년 전 우리 마을에서 본 '거짓말쟁이 생선 장수'나 '바람난 약사 아내'의 변주곡일 뿐입니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가십' 속에서 진실의 조각을 건져 올리고, 과거의 평범한 경험을 현재의 복잡한 사건에 대입하여 순식간에 핵심을 꿰뚫어 보죠.


미스 마플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바로 '완벽한 무해함'입니다. 셜록 홈즈가 나타나면 모두가 긴장하지만, 구석에서 조용히 코바늘을 놀리는 '호호 할머니'를 누가 경계하겠어요? 범인들은 그녀 앞에서 무장해제되고, 무심코 결정적인 진실의 조각을 흘리고 맙니다. 그녀는 이 평범하고 유약해 보이는 외모를 가장 완벽한 위장술로 사용하는 셈이죠.


긴박한 추격전이나 화려한 액션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나라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에, 어쩌면 가장 현실적이고 서늘한 추리 소설인지도 모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미스 마플'.

그녀는 나이 듦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 제가 떠올리는, 제 노년의 완벽한 롤모델입니다. 아, 오해는 마세요! 제가 동네방네 살인 사건을 찾아다니겠다는 뜻은 아니고요. (하하하)


그저, 주름진 손으로 가장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 안에서 삶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잃지 않는 것. 화려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그런 '총명하고 지혜로운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는 저의 소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이랍니다.


오늘 만물상점을 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이 사랑스러운 할머니 탐정의 자리가 하나쯤 생겼으면 좋겠네요.


미스마플의 활약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소개해 드릴테니, 꼭 읽어보세요!!




대표적인 작품 추천


미스 마플은 총 12편의 장편 소설과 20편의 단편 소설에 등장합니다.

<목사관 살인사건 (The Murder at the Vicarage)> (1930): 미스 마플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념비적인 장편입니다. 그녀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정립된 작품입니다.

<화요일 클럽의 살인 (The Thirteen Problems)> (1932): 미스 마플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단편집입니다. 안락의자에 앉아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 돋보입니다.

<예고 살인 (A Murder is Announced)> (1950): 미스 마플 시리즈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신문에 살인 예고 광고가 실리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패딩턴발 4시 50분 (4:50 From Paddington)> (1957): 기차 안에서 다른 기차에서 벌어지는 살인을 목격하며 시작되는 스릴 넘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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