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기

by 빛의골방

무뚝뚝한 아버지는 표현하는 법이 없었다.

좋으면 좋다, 예쁘면 예쁘다, 잘했으면 잘했다

해주면 참 좋았을 것을.


벌이가 넉넉하지 않아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서

간절히 바랐던 기도가 하늘에 닿지 않아서

였을까?


아버지는 미간엔 깊은 회한을 새기고

입가엔 팔(八) 자를 새기고

좀처럼 기쁨도, 슬픔도, 감동이나 감사도

내 보이지 않으셨다.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던지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던 아버지.

꺼내보고 싶어도 아버지와 함께 했던

사소한 추억조각하나 건져지지 않는다.


무관심의 인이 박혀 얼어붙은 어린 날의 기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좀처럼 녹아내리지 않는

차가운 기둥이 되어버렸다.


남은 것이라고는

'치-아빤 나한테 관심도 없고!'

'나 용돈 부족한데 맨날 돈 없다고 기다리라고만 하고!'

'난 딸기가 좋은데.. 아빠는 맨날 자기 좋아하는 감만 사와!'

이기적인 자아에 둘러 쌓인 풋내 나는 껍데기뿐.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어보니

딸도 아버지를 똑-닮았다.

표현할 줄 모르는 무뚝뚝이.

그래서였을까? 무뚝뚝이 딸은 촉새 같은 남편을 만났다.


어린 시절 못 얻어먹어 가슴에 얹힌 딸기 이야기를

푸념 삼아 남편에게 꺼내 놓았다.

그리고 남편은 그 묵은 얘기를 굳이!

아버지 앞에다 촉새 같이 내뱉는다.


노인이 된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저

아무 미동도 반응도 변화도 없이 듣기만 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친정을 갈 때마다

식탁엔 딸기가 놓여 있었다.

말로는 "애들이 딸기 좋아해서 사다 놨다"

한다.


무뚝뚝이 딸은 정말 그런 줄 알았다.

당연히 그 딸기는 손주 들 거라고만 생각했다.


촉새 남편이 한마디 한다.

"맨날 딸기 못 얻어먹었다고 한탄하더니 이제 좋아?"


"그게 뭐, 나 먹으라고 산거야? 애들 줄려고 그런 거지!"


"이 바보, 어쩜 그렇게 모르냐!

애들 핑계로 자기 먹으라고 사 오시는 거지!"


무뚝뚝이 부녀는 그렇게 여전히 모른 채,

알아도 모른다는 침묵으로 말을 삼킨다.


철이 다 지나서 해가 뜨거워지는 계절이 올 때까지

딸이 오는 날이면 항상 딸기를 사러 다녀오는 아버지.


물이 뚝뚝 흐르는 딸기 안에

지난날 못 다 챙겨준 무뚝뚝한 부정을 놓아두었다는 걸.

그 안에 미안함과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을 가득 담아 두었다는 걸.


그렇게 말없이 아버지는 딸기를 사고,

딸은 감을 산다.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최선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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