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개구쟁이는 웃음기술자.
너는 동네에서 소문난 개구쟁이야.
분필로 골목에 거대한 미로를 그리고,
친구들 신발끈을 서로 묶어 바꿔놓고,
아빠 알람에 삑삑 고무오리 소리를 몰래 녹음해두기도 하지.
그런데 오늘은 좀 선을 넘었어.
베란다에서 말리던 이불을 질질 끌어 거실에 옮겨
“구름 기차!”
하며 굴리다가 물컵들이 와르르—!
바닥이 번쩍번쩍 칠푸덕 철푸덕 물바다가 되고 말았지.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어.
"진우야, 장난은 모두가 즐겁게 웃을 때가 장난이야.
오늘은 엄마까지 울게 만들었어.”
너는 화가 나서 활활 달아오른 얼굴로 대문을 쾅 닫고 나왔어.
발길이 저절로 향한 곳은 마을 끝의 거울 호수.
봄이면 호숫가에 노란 수선화가 줄지어 춤을 추는 곳이지.
너는 속상한 마음에 호숫가에 털썩 앉아
돌멩이를 퐁, 퐁. 퐁—퐁.. 던졌어.
동그랗게 퍼져 나가는 물결을 보며,
오늘 하루를 떠올렸지.
엄마 눈가에 맺히던 물기,
친구들이 “에이” 하고 지었던 표정…
물결은 잠잠해지는데, 마음은 자꾸 꿀렁거렸어.
‘난 그냥 재밌게 해주고 싶었는데…
왜 다들 나한테 화만 내고 안 웃는 거지?’
그때 수선화들이 “후—우” 하고
바람을 타고 너에게 질문했어.
“정말, 그 이유를 모르겠어?”
하고 말이지. 그것도 잠시,
다시 심심해지기 시작한 너는 또 그 장난기가 발동했어.
“어~, 저기 큰 바위 위에서 돌을 던지면 더 많이 튈 텐데!”
너는 얼마나 멀리 가는지 당장 시험해보고 싶었어.
너는 ‘출입 금지’ 표지판을 힐끔 본 뒤 무시하고,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살금살금 바위로 올라갔지.
바위엔 이끼가 미끄덩하게 끼어 있었어.
그래도 성큼—!
아찔한 그 순간, 쑤욱!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앞으로 쏠렸어.
얕아 보이던 물가가 갑자기 푹 꺼지더니,
그 순간 차가운 물속으로 풍덩—!
“헉…!”
너의 옷은 순식간에 물을 삼켰고, 발목엔 수초가 걸렸어.
물속은 생각보다 깊었고, 가슴은 거침없이 쿵쾅거리며 무서움이 쑥 올라왔지.
바로 그때, 수선화들이 후— 후 하고
더 크게 누군가에게 요청의 바람을 불기 시작한거야.
노란 꽃잎 사이로 물빛 반짝임이 모이고,
요정 리아가 급하게 나타났지.
햇살을 머금은 노란 날개, 맑은 물빛 눈.
“무슨 일이에요. 이런, 진우, 진우야!
힘 빠지지 않게 등을 띄워!
팔은 크게 벌리고— 좋아!”
리아가 손짓하자 호숫가의 수선화 줄기들이 쑤욱 자라나
네 가슴과 겨드랑이를 감싸는 노란 구명띠가 되었어.
그렇게 너의 몸이 살짝 떠올랐지.
그 사이, 언덕 아래서 황급히 마렌이 달려왔어.
아직 요정은 아니지만 숲이 인정한 특별한 소녀, 아이들의 '마음 말'을 잘 듣는 아이.
마렌은 긴 나뭇가지를 물가로 뻗으며 외쳤어.
“여기! 한 손은 줄기, 한 손은 내 쪽!
숨은 천천히— 하나, 둘…
그래, 아주 잘하고 있어!”
넌 마렌이 준 가지를 꽉 붙잡았고, 리아의 구명띠가 살짝 당겨 주었어.
드디어 척— 하고 물에서 빠져나온 너는, 젖은 채 모래 위에 스러졌지.
심장은 쿵쾅쿵쾅, 다리는 후들후들.
마렌이 수건을 둘러주며 말했어.
“괜찮아졌어. 근데 진우,
물가 바위는 이끼 때문에 미끄러워.
그리고 ‘출입 금지’는 장난으로 넘기면 진짜 위험해.”
리아가 고개를 끄덕였어.
“네 장난기, 빠른 손, 호기심
—그건 다 멋진 재능이야.
하지만 먼저 ‘안전’과 ‘배려’.
이게 중요하지. 그러니 우리, 약속하자.”
마렌이 작은 카드를 꺼내 네 손에 쥐여 줬어.
1. 모두가 웃니?
2. 안전하니?
3. 끝나고 더 친해지니?
“이 세 가지를 모두 통과하면
그건 진짜 좋은 장난이야.”
마렌이 긍정의 윙크를 했어.
리아는 손톱만 한 거울 씨앗과 노란 수선화 리본을 내밀었어.
“거울 씨앗은 지금 네가 한 다정한 약속을 기억해 줄 거야.
힘들 때 손에 놓고 다시 속삭여.
리본은 오늘의 약속—좋은 장난만 하겠다는 표식이야.”리본을 손에 묶어줄게.
너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어.
“알았어. 아까는 두 번째에서 탈락했지만 다음엔,...”
너는 젖은 신발을 털며,
호숫가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를 주워
바람 초인종을 뚝딱 만들었어.
수선화 줄기와 조그만 깡통, 조약돌이 ‘딸랑—’ 맑게 울려주었지.
“와, 너 손 진짜 빠르다!”
마렌이 손뼉 쳤고, 리아가 말했어.
“가 보자.
오늘의 장난을 사과해야지.”
그날 저녁, 너는 베란다 앞에 바람 초인종을 달았어.
문을 살짝 열고 “후—” 하고 바람을 불자,
‘딩—’ 하고 소리가 울렸어.
‘엄마, 내 장난이 엄마를 울렸어. 미안해.
이건 엄마만의 웃음 초인종이야. 내가 누를게, 자주.’
엄마는 동그랗게 눈을 뜨더니, 피식— 웃었어.
“우리 개구쟁이,
좋은 장난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엄마가 너를 꼭 안아 주었고, 너는 쑥스러워 고개를 숙였어.
손목의 노란 리본이 불빛에 반짝이며 빛이 났고,
그 빛이 리아 요정에게 닿아 미소를 짓게 했지.
다음 날 학교에서 너는 바빴어.
체육 시간엔 느린 친구의 신발끈을 몰래 두 겹 매듭으로 단단히 묶어 주고(넘어지지 말라고),
청소 시간엔 쓰레받기에 종이 수선화 깜짝 카드를 붙였지.
‘수고했어, 오늘의 MVP!’
아이들이 깔깔 웃자, 어제 물가에서의 네 반성이 떠올랐어.
“장난은 모두가 웃을 때 장난”—이제 진짜 뜻을 알겠더라.
거울 호수 쪽에서 바람이 불어왔어.
멀리 수선화가 고개를 끄덕였고,
어딘가에서 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안전 먼저, 마음 먼저.”
마렌의 목소리도 울렸어.
“그리고 진짜 멋진 장난꾼은,
사람을 더 가까이 데려와.”
너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었어.
오늘의 개구쟁이는 문제아가 아니라,
웃음 기술자였거든.
며칠이 지났어.
해가 지려는 저녁이면, 베란다 앞 바람 초인종이 살짝 ‘딩—’ 하고 울려.
엄마는 그 소리만 들려도 먼저 웃게 되었지.
가끔은 너도 슬쩍 건드려봐.
“나, 오늘 조금 잘했어.” 하고.
네 필통 속엔 마렌이 준 작은 카드가 있어.
모두가 웃니?
안전하니?
끝나고 더 친해지니?
그리고, 장난이 떠오를 때마다 너는 꼭 이걸 먼저 읽어.
“사람을 더 가까이 데려오는 장난, 기억하지?”
숲속에서 리아와 마렌이 속삭여.
물론, 넌 여전히 개구쟁이야.
하지만 이제 너의 장난은 모두가 웃을 때 시작되고, 끝날 땐 조금 더 가까운 거리를 남겨.
그게 너와 수선화, 리아와 마렌이 함께 만든 약속이거든.
너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바람 초인종을 ‘딩—’하고 울려.
그리고, ... 세상에서 제일 작은 종소리로,
가장 멋진 장난을 시작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