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야
애리는 세상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태어났어.
아기가 울어도 놀라지 않고,
큰 소리가 나도 눈을 깜빡이지 않으니까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지.
“이 아이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날 병실에서 말없이 애리를 안고 울었어.
하지만 곧 두 분은 수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애리에게 손끝으로 말을 걸며 따뜻한 마음을 전했어. 언니는 매일같이 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으로 ‘사랑해’를 그렸지.
애리는 ‘조용한 세상 속의 아이’로 자랐어.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가족의 품 안에서 사랑을 느끼고, 웃고, 기뻐할 줄 아는 아이였지.
그런데 애리가 학교에 가고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
친구들은 자신들과 다른 애리에게 말을 걸다가도 곧 조용해졌고, 속삭이며 서로를 부르다 애리만 빼놓기 일쑤였어.
“얘는 말을 안 해.”
“같이 놀면 재미없어.”
애리는 그 말들을 듣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눈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었어. 웃는 얼굴 뒤에 숨어 있는 거리감, 눈길을 피하며 등을 돌리는 모습…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애리는 어느새 외톨이가 되어 있었어. 그래서 자주 혼자 걷게 됐어. 조용한 공원 구석길, 노란 프리지어가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길을 따라서.
그날도 그랬어.
숲 속 깊은 곳,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작은 공터에서
애리는 작은 앵무새 한 마리를 만났지.
붉은 깃털이 예쁘게 빛나는 앵무새였어.
앵무새는 날지 못했어.
작은 다리를 다친 채, 나뭇가지 아래에서 떨고 있었거든.
애리는 조심조심 다가가 손을 내밀었어.
그리고 마음으로 말했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아프지 마.’
앵무새는 놀라지 않았어.
반짝이는 눈으로 가만히 애리를 바라보았지.
“안녕. 내 이름은 미미야. 엄마가 지어주신 이름이야.”
그때였어.
숲이 어둠으로 차고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졌어.
풀숲이 바스락거리더니 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난 거야!
앵무새 미미는 깃털을 부르르 떨며 애리 뒤로 숨었고,
애리는 숨도 쉬지 못한 채 앉아 있었어.
갑작스러운 늑대의 등장에 애리는 온몸이 굳어버렸어.
앙상한 가지 아래, 부러진 다리를 간신히 이끌고
앵무새 미미가 애리의 품에 파고들며 외쳤지.
“살려줘요! 제발! 누가… 도와줘…!”
그 목소리가 애절하게 숲 전체에 메아리로 울렸어.
그 울림 끝에— 숲 깊은 곳,
오래된 나무들 사이에서 빛이 피어올랐어.
하늘에서 떨어진 별처럼,
은빛 가루가 반짝이며 떠오르더니
그 빛 안에서 작고 환한 존재 하나가 나타났지.
바로, 숲의 요정 리아였어.
리아의 날개는 햇살을 품은 프리지어처럼 노랗고,
눈동자는 투명한 숲의 샘물처럼 맑았어.
그녀는 아주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어.
“프리지어의 숲이 울었구나.
누군가…
진심으로 살고 싶다고 외쳤어.”
리아는 가볍게 바람을 타고
애리와 미미 앞에 내려앉았어.
애리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미미는 울먹이며 말했어.
“이 아이는 아무 잘못도 없어.
듣지 못하지만, 나를 살려주었어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야.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요…”
리아는 애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어.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지.
“그래… 진심이 닿았구나.”
그러자, 숲 속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존재 마렌이 모습을 드러냈어.
“아직은 인간이지만, 숲이 인정한 특별한 소녀 마렌”은 늘 착한 아이들 마음속에 살았지.
늑대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어.
우린 이 아이의 편이야.
함께 지켜줄 거야.
그리고 다 함께 너랑 싸워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니까 그만 돌아가. 지금 당장!”
작은 몸의 리아,
마음을 읽는 마렌,
그리고 용감한 앵무새 미미.
그렇게 셋은 애리 앞에 당당히 서 있었어.
빛나는 깃털과 날개, 따뜻한 마음으로.
늑대는 크어엉~~
또 다시 크어엉~~
위협적으로 몇 번 더 울었어.
그리고 마침내 크어엉 달려드는데,
꼼짝을 하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그 모습에,
그만 늑대가 고개를 떨구고 슬며시 돌아서는거야.
늑대는 영악했어.
아무래도 숲의 요정 '리아'를 건드린다면,
영원히 숲에서 추방을 당할것 같았거든.
숲은 다시 고요해졌고,
바람은 노란 프리지어 꽃잎을 살짝 흔들었지.
말없이 눈을 깜빡이자 애리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어.
그건 무서워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편이 되어준 순간ㅡ감동의 눈물이었어.
‘나에게도 친구가 생겼구나.’
요정 리아는 웃으며 말했어.
“이제부터 넌, 우리와 함께야.”
애리는 작은 손으로 리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수어로 말했어.
‘고마워.’
그 말은,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말처럼 보였지.
그날 이후, 애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숲을 걸었어.
숲 속엔,
마음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길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어.
애리는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누구보다 맑고 깊은 마음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다름은 우리를 갈라놓는 벽이 아니라,
이해와 관심으로 잇는 아름다운 다리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알아보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순간—
마법처럼 아주 작은 기적의 시작이 될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