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는 말이야 - 2 / 3

by 도리

"왜 전화 안하냐고오오"


그동안 문자로만 연락하고 전화 한 통 한 적이 없었던 게 맘에 들지 않았던지

엄마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아빠한테 묻고 있었어.

물론 아빠도 이유는 있었지. 소개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태였고 아직 만난 적도 없는 사이라

먼저 전화 걸고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

사실 엄마는 아빠에게 첫 연애 상대였거든.


[ 개수작 부리지 마라 안 믿는다. ]


물론 엄마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안 믿지만 말야.

하지만 그때 아빠는 자존심상 첫 연애여서 라던지 잘 몰라서 라던지 그런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어.


"아~ 전화하려고 했지"

"개구라쟁이... 여자가 먼저 전화하게 하는 게 어딨 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을지 그 짧은 시간에 수천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왔다 갔다 했던 것 같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도 안 났어. 생각이 너무 많으니까 그냥 그 상태로

머리가 정지된 것처럼 느껴진적 있지 않아? 아빠가 딱 그랬던 것 같아.


"어... 그게.."

"야! 내 친구 소개시켜줄게 잠깐만, 야아~ 아직 말 다 안 끝났단.."


변명거릴 찾고 있는데 엄마가 친구를 소개시켜준다며 전화를 바꿔주는 거야. 아니 엄마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지는 걸로 봐선 뺏겼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엄마의 목소리가 멀어지다 끊어지려 할 때쯤 모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도리씨 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아 네...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으셨을까요..."


당연히 여자일 줄 알았는데 남자목소리가 흘러나오니 기분이 좋진 않았지. 더군다나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에 가까운 늦은 시간이었고 말야. 말투가 예쁘게 나올 리가 없었어. 연애가 처음이긴 해도 나도 남자였거든.


- 몇 살인지 물어봐 -


분명 소곤소곤 말한다고 얘기한 거겠지? 일행 같은 여자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어.


"아 근데 도리씨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저는 그쪽이 누군지 이름도 모르는데요?"

"..."


까칠하게 그러나 정중하게. 어른답게 얘기하자. 엄마친구들이라 했으니 나보다 못해도 4살은 많겠지. 하지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감 있게 얘기하자라고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대답했어. 그러자 당황했는지 잠시 말이 끊기더라고


'성공인가? 나 임팩트 좀 있었으려나?'


한참 아이고 나잘했다 하면서 어깨가 높아지고 있는데 전화기에선


"푸하하하하하!!! 아 미안해요 미진이 친구 허의무라고 해요. 놀랬죠? 아~ 미안해라"


진짜 미안해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마치 아이 다루는듯한 말투에 기분이 더 안 좋아졌어.

그거보다 더기분이 안 좋았던 게 뭔지 아니?

전화기에서 일행들의 웃음소리가 다 흘러나오고 있었단 거야.


"어떡해~ 완전 귀여워"


아까 몇 살이냐고 물어보라며 속삭이던 여자의 목소리도 들리고 어른스럽게 보이려다가 오히려 더 애취급을 당해 정말 최악이었어.


"하하하 미안해요 근데 몇 살이에요? 정말 우리보다 4살 어린 거 맞아요?"

"네"

"우와 진짜? 우린 당연히 뻥인 줄 알았는데 지까짓 게 무슨 연하를 어? 어? 야! 그거 경찰차야!"


정말 무슨 상황인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어서 침착하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갑자기 전화받던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치더니 옆에 있던 일행에게 전화를 넘긴 거야


"아.. 미진이 또 저런다.. "

"무슨 일이에요?"

"응? 앞으로 많이 볼 텐데? 별거 아니에요~ 재 술만 먹으면 뛰어다녀요. 근데 신기하게 안 넘어지는 거 있죠?"


내 나이를 궁금해하던 그 여자 같았어. 이 사람도 아까 그 전화받던 남자처럼 마치 나를 마치 어른이 아이 다루듯이 나긋나긋하면서 여유 있게 얘기하더라고.

한참 주절거리던 그 여자는 깜빡했던걸 기억해 냈다는 듯이 소리쳤어


"아! 나는 미진이 친구 연화예요 나중에 미진이랑 같이 꼭 봐요. 맛있는 거 사줄게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저도 미진이 잡으러 가야 될 것 같아요~ 미안한데 통화는 끊을게요"

"그러세요~"


어른스럽게 보이는 건 개나 줘버리라며 아빠는 이미 해탈해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전화가 끊어지고 바라본 모니터에는 전화받느라 신경 쓰지 못했던 탓에 이미 죽어버린 캐릭터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어.

마치 방금 전 전화로 털려버린 아빠의 멘털처럼 아이템도, 골드도 다 털려버린 상태로 말이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답답한 마음에 담배한대를 입에 물고 다시 게임을 하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자꾸 울컥울컥 하는 게

게임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 어린애취급 당한 기분, 놀림받은 기분, 그리고.. 친구라고는 하지만 이 시간까지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그 사실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것 같아.

담배선인장에 담배를 비벼 끄고 화풀이라도 하듯이 모니터를 툭 치듯 꺼버린 채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은 또 왜 그렇게 오지 않던지.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친구의 남자친구라고 하면 더 조심해야 되는 거 아닌가?'


여러 생각들로 뒤척거리다 보니 밖이 슬슬 밝아지는 게 아침이 왔다는 걸 알 수 있겠더라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였을까? 배가 고파 주방으로 뒤뚱뒤뚱 걸어가 라면이라도 있나 찬장을 열었지


'오~ 럭키!'


언제 사놨는지 모를 라면이 딱 한 봉지가 있더라고.

재빠르게 물을 올리고 화장실로 가서 담배를 물고 크게 한 모금 빨아들여서 내뱉을 때쯤 전화가 울리는 거야

발신자를 확인했더니 엄마였던 거지.


"결국 내가 전화했었네..."

"응?"

"하아.. 내가 했네.. 결국 내가 했어.."


전화를 받자 수화기에서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어. 뭔가.. 큰 싸움에서 진 것 같은 맞아 그런 목소리였던 것 같아.


"언제 전화하나 보자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쳐가지고 내가 어제 전화를 했었네..."


무슨 뜻인지 딱 느낌이 오자 아빠는 미안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해서 화제를 돌리고자 했어.


"마누라! 밤늦게까지 위험하게 뭐야?"

"왜? 친구들이랑 같이 있었는데?"

"남자도 있더구먼!"

"응? 개들도 내 친구들인데?"


맞아. 엄마는 친구들이 엄청 많았어. 솔직히 그때일은 별거 아니야. 아빠랑 있을 때도, 차를 타고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친구들, 오빠들 이라며 전화를 엄청 많이 하곤 했었어.

아빠는 그게 맘에 안 들었지. 나랑 있는 시간에는 나한테만 집중해야 하는 거잖아? 그게 서로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래서 좀 나중일이지만 엄마가 친구들과 연락하는걸 아빠가 억지로 못하게 한 적이 있었어.


- 내가 친구가 어딨어.. -


그게 아빠가 후회하는 것 중에 하나야. 내 사람이라고 해서 내 여자라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이 가진 것들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고, 억제하고, 강제할 권리? 그런 건 없더라구. 그리고 그게 한 사람의 인생을, 성격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되더라고

물론 상황에 따라 좋은 쪽으로 바뀔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빠는 반대였던 것 같아.


"아니 친구들인데 그 시간에 굳이 남자랑..."


화장실에서 나오며 아까 올려놓았던 라면 냄비가 생각나 주방으로 뛰어 갔더니 그래도 다행히 많이 졸지 않아 적당히 딱 맛있게 끓여지고 잇더라고

헤에 웃으며 어깨와 귀 사이에 핸드폰을 놓은 상태로 밀착시켜 고정하고 양손 소매를 손바닥까지 끌어내려 냄비를 잡았어.


"왜? 나 친구들이랑 놀면 안 돼? 학교 다닐 때부터 아주 오래된 친군데~"


천친난만한 목소리로 내가 왜 화가 나고 서운한지 조차 이해 못 하겠다는 목소리로 묻는 엄마의 말에 음식을 급하게 마시다가 가슴에 딱 얹힌 것처럼 답답한 게 아주 죽을 맛이더라고


"아니 놀지 말라는 게 아니고 으아아악!"


전화하랴 냄비 들고 방으로 들어가랴 정신이 없어 미쳐 신경 못쓴 문지방에 발끝이 걸렸고 살아야 된다는 일념하에 냄비를 너무나도 멋있게 방안으로

집어던진 거지..


"왜! 왜! 무슨 일이야? 도리야?"


아빠의 비명소리에 엄마는 놀래서 소리쳤고 아빠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어.


"하아.. 아니야.. 라면이 많이 피곤했나 봐.. 이불까지 덮고 주무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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