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엄마는 말이야 - 1 / 3

by 도리

늦은 저녁.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들 한 두 명과 흘러나오는 방송이 메아리 칠 정도로 한적한 기차역.

가판대 뒤에 몸을 숨긴 한 여자가 있었어.


"미진씨?"


아빠의 말에 그 여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지.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왜 이러고 숨어있어?"


그 여자의 얼굴은 살짝 웃고 있었지만 약간 긴장한 것 같으면서도 두려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


"... 부.. 부끄러워서.."


부끄러워서.. 그게 네 엄마와의 첫 만남, 첫 대사였단다.




- 야~ 얼마뒤면 오빠 생일인데 선물 없냐? -


군대 제대 후 다녔던 대학에 복귀했을 때. 그렇게 군대에 있을 때 사회 나가면 뭘 해도 잘할 것 같다던

아빠의 생각과는 다르게 학업도 잘 안되고 여자 친구도 없어 한참 외로울 때였어.


"오? 정말 조금 있으면 오빠 생일이네? 뭐 갖고 싶은데?"

"나? 여자친구.."

"아니 갖고 싶은 거"

"그러니까 여자친구..."

"아니 그러니까 가질 수 있는 거..."

"여자 친.. 너 나 놀리냐?"


그때쯤 연아 이모를 한참 괴롭혔던 것 같아. 음.. 연아이모는 잘 모르지? 아주 오래전에 아빠랑 엄청 친했던 이모였어. 그런데 왜 '친했던'이냐고? 음.. 싸웠다거나, 절교를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연락을 안 하게 된 계기가 있거든. 우리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해볼까?


어쨌든 학교에 복학하고 자취를 하면서 많이 외로웠던 아빠는 연아이모에게 매일같이 전화 걸어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달라고 떼를 쓰곤 했었지.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빠의 생일 일주일 전이었나? 연아이모가 아빠한테 문자를 던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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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xxxx-xxxx

박미진

오빠보다 누나일걸?

나랑 친한 언니인데

연락 한번 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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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한참을 고민했어. 어떤 말을 꺼내야 할까?

어떤 말투로 보내야 할까? 맞아. 소개팅이 처음이라. 그렇게 조르고 졸라서 얻어낸 기회지만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거야. 한참을 고민한끝에 받은 번호로 문자를 보냈어.


/ 미진 씨? 안녕하세요? 연아에게 소개받은 도리라고 합니다. /


이미 발송을 눌렀고 그때부터 후회가 밀려오는 거야.

'아 미진씨가 뭐냐 촌스럽게.'

'아니야? 나는 성인이니까 성인답게 하는 게 맞잖아'

'아이고.. 등신아..'


1초에 한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생각의 파도를 타고 있을 때쯤 답장이 왔어


/ 네 안녕하세요? 연아 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


자. 이다음은 너라면 뭐라고 할래?

이미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있는데 그다음 뭐라고 물어봐야 되는지 전혀 모르겠는 거야.

가장 평범하고, 이상하지 않으며, 대화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하다


/ 지금 뭐 하세요? /


그래... 그게 최선이었어 적어도 아빠한텐 말이야...

경험이 부족하고 모든 게 어색했던 20대 초반의 아빠는 행동하고 생각하고, 일단 일 벌이고 후회하는 그런 어떻게 보면 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단다.


겁이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도전적인 모습에

멋있어 보이지만. 어렸을 때만, 그리고 책임질 게 없을 때만 한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그리고 누릴 수 있는 특권 아닐까?


나이가 들고 책임질게 많아지면 더 이상 무모하게 겁 없이 행동할 수가 없어지거든.

이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하면 어떤 책임을 지게 될까.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세상을 알아 간다는 건, 그리고 철이 든다는 건 말이야. 어쩌면 점점 더 계산적으로, 점점 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 저는 일하고 있어요ㅠ 그쪽은 직장인이세요? 아니면 학생? /


시계를 봤더니 오후 10시 35분.. 자취방 창문으로는 깜깜한 배경에 번쩍번쩍 빛이 나는 네온사인이 스며들어오고 있더라고


'밤일하나...?'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바닥을 주섬주섬 훑어 손끝에 걸린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잠깐동안 또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 오! 전 학생이에요. 미진 씨는 무슨 일 하세요? /


문자를 보내고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여 힘껏 빨아들였지. 초조했어. 궁금했고 말이야.


/ 왜요? 밤일이라도 할까 봐요? ㅎㅎ/


켁! 켁켁!!

날아온 문자를 읽다가 담변연기에 사례가 들려 기침을 해대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어

'뭐야? 귀신이야?'


/ ㅎㅎㅎ 교대근무해요~ 오늘은 저녁근무라~ 대학생이요? 무슨 과? /


별거 아닌 질문에도 반응해 주고, 첫 연락임에도 오랜 친구처럼 편안하고,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잘 이어 나가주는... 네 엄마의 첫인상은 그랬어. 엄마에게 아빠 첫인상은 어땠냐고?


[ 미진씨가 뭐니, 미진씨가! 무슨 50대 아저씨인 줄 알았잖아 구려!' ]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대화를 했고 엄마가 갓 졸업한 신규 간호사라는 거, 아빠보다 4살 많은 누나라는 거

술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며, 예쁜 액세서리를 좋아하고, 그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단다.

하루는 아빠 자취방에서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던 때였어. 그 당시 오락실게임 같은 온라인게임이 유행하고 있었거든 늦은 저녁 담뱃재로 더러워진 컴퓨터 책상 위. 나뒹굴고 있는 음료수병과 과자 봉지들 그리고 1.5L짜리 페트병을 반을 잘라 만든 재떨이 위로 피어나고 있는 담배꽁초 선인장. 영락없는 게임 폐인의 모습이었지. 그건 더 이상 대학생의 모습이 아니었어. 한참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 거야.


'아 뭐야.. 중요한순간에~ 여보세요!'


다들 그렇잖아 나한테 전화할 사람들은 정해져 있는 거. 별생각 없이 어차피 친구 아니면 부모님이겠거니 하며 발신번호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약간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았어


"넌 왜 전화 안 해?"

"응? 누구세요?"

"넌 왜 전화 안 하냐고!"


연락처를 주고받고 문자로만 연락한 지 3주쯤 됐을 때 이야기야.

깜짝 놀라 발신번호를 보니 네 엄마였던 거야.

엄마랑은 그동안 문자는 많이 했는데 전화는 한 적이 없었거든.

그게 엄마는 서운했었나 봐.


약간 술이 취한 것 같은 목소리로 아빠에게 설움 섞인 질문을 하고 있었어.


"왜 전화안하냐고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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