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한별의 이별하는 길을 듣고 나서...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날이었다.
창밖으로 쏟아지던 햇살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무심했고, 거리의 사람들은 각자의 평온한 일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하루의 한복판에서, 나는 이별을 하러 가고 있었다.
누군가와 사랑을 끝내기 위해, 아주 조용히,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별은 늘 예상과 다르게 온다. 전조가 없진 않다.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것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음을 갈라놓는다.
하지만 진짜 이별은 항상 갑작스럽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문득 내 앞에 찾아오는 것처럼.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끝내 말하지 못한 진심들이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떠나야만 할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너와의 이별도 그랬다.
어느 날부터였을까. 너를 마주보는 게 조금 두려워졌던 날.
말끝마다 조심스러움이 묻기 시작했던 순간.
웃고 있는데 눈동자가 웃지 않던 너를 알아차렸을 때.
우리는 이미,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변한 건지, 우리가 지쳐버린 건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감정이 흐려졌고, 그 무뎌진 감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온도를 잃어갔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우리는 모른 척했다.
이별이 두려워서, 어쩌면 사랑이 식은 걸 인정하기 싫어서. 그래서 웃었고, 안았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이어가다 보면, 어쩌면 다시 예전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하나로.
그러나 사랑은 기다려준다고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무너진 벽 사이로 스며든 침묵은 결국 우리를 지워냈다.
결국, 희망은 고요한 파국을 이기지 못했다.
나는 오늘 너에게 이별을 고하러 간다.
말로는 쉬운 일이지만, 마음은 온통 무너지고 있다.
널 떼어내는 길, 그 길의 시작에서부터 이미 나는 주저앉고 싶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묻고 있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너는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망설였는지. 얼마나 여러 번 말을 삼켰는지.
내게 사랑은 여전히 너였기에, 그 끝을 말한다는 건 곧 나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어떤 단어도 이 고통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저 너를 바라보는 시간들이 내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더는 아닌 걸 안다.
계속 끌고 간다고 해서 사랑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도,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관계는 누군가를 더 다치게 한다는 것도.
나보다 더 무거운 침묵을 안고 있는 너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부서졌고, 그 조각들이 내 안에서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서로를 위해 했던 인내가, 끝내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맑을 수 있다니 아이러니했다.
모든 게 무너지는 날인데, 하늘은 눈부셨고 바람은 상쾌했다.
마치 이별마저도 하나의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이토록 밝은 하루에 이별이 어울릴까.
마음은 회색인데, 세상은 파랗기만 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다신 사랑하지 않겠다고. 너만이 마지막일 거라고.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단단한 존재가 아니다.
시간을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고, 어느새 누군가 다른 사람을 만나 웃을 수도 있다는 걸 안다.
너도, 나도. 결국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웃고, 사랑하고, 다시 또 헤어지고.
그러니 이별은 슬프지만, 동시에 용서이기도 하다.
너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 그리고 나 자신도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그래서 이 말이 조금은 덜 아프게 전해지길 바란다.
나는 너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래왔다.
너는 조용히 아파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아픔을 대신 끌어안고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네 슬픔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내가 너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정이라는 건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내가 쉽게 던진 말들이 너에게는 얼마나 아프게 꽂혔을까.
말 한마디 없이 울기만 하던 너의 뒷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너는 나를 붙잡지 않았고, 나는 그걸 너의 단념으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건 어쩌면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내가 먼저 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이란, 이토록 어리석다. 지나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고, 다 잃고 나서야 진심을 말한다. 나는 이제야 고백한다. 그날, 나 역시 울고 있었다고. 돌아서던 발걸음이 백 번은 흔들렸다고. 네가 나를 부르기만 했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돌아섰을 것이다.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붙잡아달라는 말. 조금만 더 우리를 믿어보자던 말. 하지만 그 말들을 꺼내기엔, 이미 마음이 지쳐 있었다.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아름다움을 상처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떠났다. 너를 위한 이별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시간이 흐르면 너는 나를 잊을 것이다. 나도 너를 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계절로 남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올 봄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만이 공유했던 장면들, 나눴던 말, 웃음, 눈물, 모든 것이 내 안에 살아 있다. 잊지 않기로 했다. 그건 이별이 아니라, 기억이다.
그래서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 자신도 너무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서로를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을 다했다고 믿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지켜내려 했던 날들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나는 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대신, 너와의 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그 마음만큼은 이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제 너를 보내는 이 길의 끝에서, 나는 다시 내 삶을 걸어갈 것이다.
아직은 많이 서툴고, 여전히 눈물짓겠지만, 그 눈물조차도 너라는 계절이 내게 남긴 따뜻한 흔적이라 믿는다.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 그 흔적을 나는 기꺼이 간직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잘 지내. 네가 웃을 수 있길 바란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누군가는 해줄 수 있기를. 내가 전하지 못한 사랑까지, 누군가는 따뜻하게 전해주기를 그리고 언젠가, 정말 언젠가 아주 멀어진 후에, 우리가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는 부디 밝게 웃어주길.
아무 일 없던 사람들처럼 말없이 지나치지 말고, 한 번쯤은 인사해주길.
"잘 지냈어?"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렇게, 이별하러 가는 길은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용히 돌아서서, 다시 나의 시간을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