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 어머니의 목소리
밤은 참으로 느리게 물러나고 있었다. 마치 스스로도 이 세상의 어둠이라는 직책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새벽의 기운을 애써 밀어내는 미련한 거인처럼, 도시의 모든 풍경 위에 검푸른 장막을 길게 드리운 채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주인공은 불조차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잠긴 창가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밤의 잔영 속으로 스며든 듯 고요했고, 그의 몸 안의 모든 움직임 역시 외부의 흐름과는 단절된 채 정지된 고요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기다림'의 무게가 숨 막히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투명한 거대한 활시위가 그의 가슴팍 한가운데 팽팽하게 당겨진 듯,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극도의 긴장감으로 온몸을 전율시켰다.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온 세상이 거대한 숨을 들이쉬듯 숨죽인 채, 이 미지의 팽팽함이 무엇으로 터져 나올지 고요히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팽팽한 정적, 그 숨 막히는 고요의 심연을 가르고, 마침내,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영혼이 갈망했던 단 하나의 소리가 들려왔다.
**"아들아…."**
그것은 단순히 음절로 이루어진 소리, 혹은 의미를 가진 하나의 단어, 혹은 언어로 규정될 수 있는 미약한 울림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그의 혈액 속 깊은 곳에서부터, 수억 년의 세포 기억 속에서부터 끌어당겨져 오는, 태곳적부터의 부름이었다. 그의 모든 존재를 흔들어 깨우는, 삶의 근원에 뿌리내린,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인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의 음성은 그의 어릴 적 기억 속에서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 마치 오랜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벨벳처럼 포근한 온기가 배어 있었지만, 동시에 그 목소리에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겁고 깊은 슬픔과 함께, 켜켜이 쌓인 긴 세월의 흔적,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터져 나오는 헤아릴 수 없는 미처 전하지 못했던 수많은 고백들이 절절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 압도적인 무게감은 마치 영원히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거대한 서사시처럼 그의 온몸을 휘감으며, 그의 존재 깊숙이 박혀들었다.
"나는…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침묵했단다." 목소리는 고통스러운 과거를 회고하듯 아프게, 그러나 흔들림 없는 단단함으로 나직이 읊조렸다. "나는 그 침묵이 너를 이 세상의 모든 아픔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었다. 그저 너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너를 보호하는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여겼지. 하지만 나는 어리석었다. 나는 나의 침묵으로 네 길 위에 드리운 그림자들을 헤아릴 수 없이 증폭시켰을 뿐이었어. 너는 아마도 네 안의 진정한 침묵, 너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두려웠을 게야. 그래서 너는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부의 세상에서 수많은 타인들의 목소리를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게지. 그러나 그것은 결국 너의 길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 뿐이었어."
주인공은 어머니의 고백이 담긴 말에 무심코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억눌려 있던 그의 영혼을 강타했고, 그 충격과 동시에 그의 유년 시절의 모든 순간들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어둠 속에서도 자신을 향해 말없이 숙여지던 어머니의 그림자. 갓 지은 밥 냄새와 소박한 비누 향이 배어 있던, 고단한 노동으로 거칠어진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이 자신을 감싸던 순간들. 그리고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자신은 결코 눈치채지 못할 거라 생각하며, 애써 그에게서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몰래 훔치던 어머니의 가녀린 뒷모습이었다. 그 모든 기억들은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일깨웠고, 아픔과 그리움, 미안함과 더불어 뒤늦은 깨달음으로 뒤엉켜 그의 영혼을 강렬하게 휘감아왔다. 그의 심장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격렬한 회한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왜… 왜 그때는 제게 진실을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끝내 억눌러왔던 울분과 회한, 그리고 외로움이 뒤섞인 질문을 힘겹게 토해내고 말았다. 그 질문 속에는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외로이 목소리들 사이를 헤매야 했던, 차마 설명할 수 없었던 그의 아픔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왜 제가 그토록 많은 낯선 목소리들 사이에서 혼란과 고통 속에서 홀로 방황해야만 했나요? 왜 아무도 저에게 진실의 나침반을 주지 않았던 건가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어떠한 흔들림도 없는 견고하고 단단한 의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온 세상을 포용하는 강물처럼 유연하면서도, 동시에 모든 풍파에 굴하지 않는 바위처럼 결코 부서지지 않는 확신으로 차 있었다.
"네가 걸어야 할 길은, 결코 다른 이들의 말이나 다른 이들의 경험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너만의 유일한 길이었단다. 심지어 나, 너의 어머니가 건네는 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그저 너에게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하나의 '열쇠'만을 쥐여줄 수 있을 뿐이었지. 그러나 그 열쇠로 미지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너 스스로의 의지와 용기에 달려 있는 온전한 너의 몫이어야만 했어. 그 길은 아무도 대신 걸어줄 수 없는, 너만의 영원한 여정이었단다."
다시금 고요가 방 안을 가득 메웠지만, 이제 그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더 이상 그의 심장을 짓누르던 고통스럽고 불안한 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방황 끝에 찾아온 안식처처럼, 그의 모든 불안과 존재의 본질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듯한, 깊고도 평화로운 '치유의 정적'이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그 심오한 말을 통해, 비로소 존재의 본질적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말' 그 자체가 정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은 그저 그 자신의 영혼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었음을. 그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그는 자신의 지나간 과거, 고독과 혼란 속에서 홀로 방황했던 모든 발자취, 그리고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했던 인정과 진실에 대한 자신만의 해소되지 않던 갈증을, 그 모든 것을 고통스러울 만큼 선명하게, 그리고 마침내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열쇠… 세상의 진실을 여는 열쇠는 내 손에 쥐여졌으나, 그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마음속 깊이 오랜 시간 동안 뿌리내려왔던, 존재를 갉아먹던 짙은 두려움이, 난생 처음으로 그를 짓누르던 무거운 족쇄를 풀고 서서히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제 내일 어떤 새로운 목소리가, 혹은 어떤 알 수 없는 운명의 시험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했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흔들림 없는 확신을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깨달았다. 이제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그 어떤 외부의 소리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가 마침내 고요하고 강인하게 움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것은 약하지만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처럼 그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고, 이제 그 불씨는 세상을 밝힐 거대한 불꽃으로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