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라는 연고의 유통기한은?

엄마와 아들의 파레고리아 연고(1)

by 유호현 작가

구급상자는 늘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있다. 누군가 다쳤을 때만 그 존재가 드러난다. 뚜껑을 열면 오래된 약들과 마주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연고, 기억보다 오래 멀쩡한 반창고, 먹어도 될지 의심스러운 해열제.

몇 달 전, 오랜만에 카톡 프로필을 훑다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구급상자를 연 느낌. 잊고 있던 얼굴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나만 보면 ‘언제’ 밥 한번 먹자던 친구. 그동안 누구랑 언제 밥을 많이 먹고 다녔는지 10년 전의 홀쭉했던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우정 영원히’를 밥 먹듯 외치던 그놈의 프로필엔 이제 10대 남자 아이가 있었다. 설마 아들???


그렇게 스쳐가던 얼굴들 사이에서 ‘마침내’ 연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18년 혈액암에 걸린 장인어른 간병 때문에 처갓집 식구들이 번갈아가며 서울에 가야 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올라가던 날. 그 친구 부부가 병원으로 왔다. 나의 25년 지기이다.


“마침 방 하나가 남아서 청소해 뒀어. 보호자 침대에 둘이 있지는 못할 테니 한 명씩 번갈아가며 우리 집 방 써요.”


‘마침’이라고? 그 집은 1년 2년 산 집이 아니고 오래 살아온 공간이었다. 방 몇 개가 있는지 모를 리도 없을 텐데. 그 단어 하나에는 꾹꾹 눌러 담은 배려가 스며있었다.

그건 언제 한번 밥 먹자가 아니었다. 꼭 그 집에 묵어야 할 이유와 여유를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우린 너무 미안해서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어느 날은 그의 아내가 혼자 문병 왔다. 자신의 단골 한정식집 반찬을 도시락으로 준비해 왔다. 그녀는 이제 겨우 세 번 정도 만난 내 아내의 손을 한참 동안 꼭 잡아주었다.


그러다 오랜 간병으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던 때, 그 친구가 백병원 앞 맥도날드에서 보자더니 햄버거 하나를 나보고 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가장 비싼 버거를 하나 골라 먹는 것이었다. 떠나는 길에 햄버거 값이라며 봉투 하나를 내게 찔러주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 안에는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그는 20만 원을 보내왔다. 남편을 사별한 장모님 마음을 잘 보살펴 주라고. 장모님 얼굴도 잘 모르면서 말이다.


그건 연고였다. 덕지덕지 바르지 않고, 면봉에 조금 덜어내어 상처가 덜 놀라게 조심히 바르는 연고. 공교롭게도 그 친구 부부는 둘 다 약사다.


연고와 관련된 고대 그리스어가 있다.


파레고리아.


곁에서 말해주는 위로. 하지만 이 단어는 그 이상이다. 파레고리아는 원래 염증을 가라앉히는 약,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정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 친구가 나의 파레고리아 연고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 바를 수 있는 위로.

울컥한 감정을 부드럽게 덮어주는 말 없는 진심이다.


우리는 감정의 염증을 잘 다루지 못한다. 붓고, 아프고, 터질 때까지 참고 버틴다. 그러다 뒤늦게 구급상자를 연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안에 있는 건 단지 약이 아니라, 누군가 나를 아파해주었다는 흔적이라는 걸.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아마 그럴지도.

하지만 파레고리아는 그걸 넘어서 작용한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스며든다.


고통을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곁에 있어주는 말 하나가 상처의 가장자리를 다독일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파레고리아다.

연고다.

그리고 나에게는, 지금도 마음 어딘가에 부드럽게 바르고 싶은 연고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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