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초월하는 위로

엄마와 아들의 연고(2)

by 유호현 작가

강제로 이혼당한 딸은 친정에 갈 수 있을까?

엄마에게 가장 가까웠던 외갓집이 그때만큼은 가장 멀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이혼 사실을 도저히 알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엄마 수중엔 돈이 얼마 없었고 당장 잠을 잘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가장 친한 친구 집에 찾아갔다.

그리 크지 않은 집에 자녀도 세명이나 있었다.

나는 '손님과 생선은 사흘이면 냄새난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다. 밥은 기꺼이 살 수 있지만, 집은 쉽게 내어줄 수 없다.

그런데 그 집의 자녀들은 엄마를 이모라 불렀고 가족처럼 아껴주었다. 엄마가 전세금 400만 원을 모을 때까지 편하게 머물게 해 준 그 남편분은 100만 원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갚지 마소."


엄마의 파레고리아 연고였다.


그 집은 엄마와 재회하고 가장 먼저 인사 간 곳이기도 하다.

난 동화 속 나라에 들어온 줄 알았다. 가족 다섯 명 모두 미남 미녀였다. 특히 그 집 누나들은 어린 시절 내가 볼 때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로 미인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도 우린 그 집과 인연을 이어갔다.

어머니 친구분은 20년 전,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누나와 문병 가서 어머니 이야기를 실컷 듣고 왔다. 그 부부는 서로 엄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다. 난 그 소소한 다툼이 고마웠다.


이제 80세를 넘긴 엄마 친구의 남편분. 최근 그 은인과 만났다.

난 인사를 드리고 그분을 안았다. 요즘 글을 쓰며 엄마라는 단어에 목이 멨다.

내가 왜 안았는지를 그분도 느끼는 것 같았다.

내 가슴팍에도 오지 않는 자그마한 은인께서 손을 올려 왁스로 단단히 고정된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셨다. 난 머리를 약간 숙였다.


"아따 크대이. 엄마가 니 모습 보면 얼마나 기쁘시겠노. 잘 살으래이. 호현아."


은인의 눈이 촉촉했다. 그렇게 엄마의 파레고리아가 아들의 머리에 닿았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힘겨운 삶을 살아간 분이다.

결혼 생활 내내 아버지의 외도를 감당해야 했고 가난했으며 결국 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었다.

그런 엄마가 쫓겨났을 때 돈이 없어 노숙해야 했다는 이야기를 내가 들었다면? 그 철없던 때에도 가슴에 불이 났을 것이다. 지금은 미칠 지경이었겠지. 엄마의 고통은 내게 시간이 갈수록 고통스러운 염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이다.

엄마는 내내 가난했지만 그 누구보다 부자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목이 메어 말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눈물은 연고처럼 흘렀다. 그 눈물이 내 염증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앞서 [엄마와 아들의 연고(1)]에서 난 질문을 던졌다.

관계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난 '아마 그럴지도'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작가분의 댓글을 보며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본 [서유기: 선리기연]에서 주인공이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기한을 정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만년이란 정해진 시간이 아니다. 사랑은 기한을 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떤 사랑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세대를 넘어, 마음에서 마음으로.

그렇게 닿는 조용한 손길.

그게 파레고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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