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한 살 많은 오빠가 되었다(에필로그)
우리 집에서 1킬로미터 이내에 김광석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걸으면 많이 듣게 되는 노래 중 하나가 '서른 즈음에'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20대에 이 가사를 들으며 서른이 되면 어마어마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서른 살의 나는 파릇파릇했다.
엄마와 사별한 지 30년.
그 시간 동안 많은 감정을 쏟아내고 엄마를 다 그리워한 줄 알았다.
불과 어제의 나도 파릇파릇하다.
글을 쓰다 보니,
울고 계셨을 거라 믿었던 엄마가
나를 향해 웃고 계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쫓겨나고, 다시 돌아오실 때.
집은 그 어느 때보다 가난했지만 다시 우리에게 올 수 있음에 웃으셨을 것이다.
돈이 없어 여름 하복 대신 아버지 와이셔츠를 입고 간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그 파릇한 의젓함에 웃으셨을 것이다.
엄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만 따로 불러 말했다.
"전세금을 빼서 엄마 수술해도 되겠니?"
내가 보던 엄마의 모습과 달라서 당황했지만 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가 어디에 살게 되든 엄마가 나으시는 게 더 중요해요."
엄마는 나를 안으셨다.
"고마워. 엄마가 전세금 빼서 수술하는 일은 없을 거야. 내가 겁이 나서 아들 응원이 필요했어."
그리고 방 안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나오지 않으셨다.
이후 부자인 강릉 외삼촌이 엄마를 도우셨다.
셋째 외삼촌은 엄마가 1인실에서 최상의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셨다.
생각해 보니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사랑해요'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전세금보다 엄마의 완쾌가 중요하다던 나에게서 확신하셨을 것이다. 결국 말하게 될 것이라고.
그래서...
그날 방에 들어가셨을 때, 나를 향해 웃으셨을지도.
야구에서 타율이 3할만 넘으면 일류 타자라던데.
현명하신 엄마는 10할 타자다.
헛스윙이라곤 없었다.
나를 온전히 아셨다.
-저는 꿈을 믿지 않지만 어머니가 자주 그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너를 가졌을 때 물속에서 붓을 건져 올리는 꿈을 꿨다'-
내가 브런치스토리 작가 심사를 볼 때 적어냈던 말이다.
난 그 붓으로 가장 했어야 할 말을 그려본다.
엄마 사랑해요.
고마워요.
행복하게 살게요.
30년이란 시간 참 파릇파릇하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슬픔이 낡지 않았다는 건,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니깐.
감정이 시들지 않았다는 건, 또다시 피어나겠다는 것이니깐.
파릇파릇함은 미완성이 아니라 준비의 신호인 것이다.
여전히 파릇파릇한 내가 내일의 나를 향해 말한다.
쉰 즈음에도, 일흔 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파릇파릇할 것이라고.
엄마보다 한 살 많은 오빠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엄마를 향해 웃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에세이에 도전했습니다.
진심을 가득 담았던 글들을 많이 응원해 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보여주신 관심과 격려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브런치북 구상이 끝날 때까지 [작가의 비유노트]로 찾아뵙겠습니다.
이번주는 쉬고 다음주 찾아뵐게요.
무더운 여름,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