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말했다.
“우리 애도 그 학원 다녀. 요즘 거기 안 보내면 아이가 무리에 못 낀대.”
또 다른 친구는 단체 카톡방에서 조용히 지냈다가, 받은 선물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따로 메시지를 받았다.
“다들 올리잖아. 너도 좀 올려야지.”
마치 공지처럼 들리는 말들.
다들 하니까, 너도.
청첩장엔 호텔 이름이 들어가야 체면이 선다는 이도 있었다.
“괜찮은 집안은 다 그래. 너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어?”
상견례 역시 파인다이닝이 아니면 남들 눈에 부족해 보일 수 있다며, 당연하다는 듯 권해온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 브랜드 옷 하나쯤은 입혀야지. 다 입는데 안 입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소외된다더라.”
그들이 말하는 ‘다’에는
언제나 ‘당연한 거’라는 공기가 배어 있다.
예의니까.
체면이니까.
사회생활이니까.
그들은 격식을 말하지만, 사실은 격차를 말한다.
그리고 그 격은,
늘 누군가를 은근히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다들 하니까 너도’라는 말은
공감의 얼굴을 한 강요이자,
평범함을 가장한 폭력이다.
다르다는 건 틀린 게 아니라는
그 단순한 진실조차
이 사회는 여전히 견디지 못한다.
물론 아무도 대놓고 뭐라 하진 않는다.
그저 눈빛으로 압박하고,
단체방에서 침묵하며,
“요즘 다 그렇더라”는 말을 슬며시 흘릴 뿐이다.
말의 모서리는 둥글지만,
그 말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사람 하나쯤은 조용히 짓누르고 지나간다.
나도 안다.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일이
용기보다 더 많은 체력을 요구할 때가 있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만은 전하고 싶다.
그렇게까지 같아야만 하는 이유—
그게 정말 네 생각이야?
그 말을 내뱉기 전에
스스로에게 물어봐.
그 말, 정말 너의 말이야?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을 네 입으로 옮긴 것뿐이야?
“다들 하니까, 너도.”
이 말이 너무 자주 들리는 사회에서
우리는 자칫,
스스로가 아닌
‘그들’이 바라는 누군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니 이제는,
그 말을 거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정말 웃기게도 말이야—
그렇게까지 같아야 한다는 그 이유,
막상 물어보면 다들 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