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어먹을 도리 따위

by 세련된미식가 세미

결혼한 친구들을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래서 새댁이 된 친구들을 만나는 건, 별똥별을 보는 것처럼 어렵다.


더 귀한 자리가 된 만큼, 그곳엔 으레 고충이 따라온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나에게는

‘도리’라는 이름의 공감과 묵묵한 수긍이 요구된다.

사랑만 믿고 시작했지만,

결혼은 결코 둘만의 일이 아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쏟아지는 시어머니 이야기 속에서,

친구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며느라기 시절을 견디고 있었다.


신혼집이 시댁 근처인 친구는

결혼하자마자 저녁 준비가 자기 몫이 되었다.

도우미가 있는 집이었지만, 시어머니는 말했다.

“도우미가 한 음식은 입에 안 맞더라.

네 음식은 참 맛있어. 고마운 줄 알아라.”

그날 이후, 그녀는 부엌일을 자연스럽게 떠맡았다.


맞벌이하는 친구는 아침마다 시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내 아들 밥은 해줬니? 어제저녁은 뭐였니?

바쁘다고 밥 안 해주는 거 아니지?”

퇴근 후에도 ‘밥부터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외모 덕에 예쁨 받던 친구는,

이제는 시어머니의 자랑이 되었다.

“우리 며느리 좀 봐라.”

시댁 행사뿐 아니라 본가 행사에도 늘 동행했고,

가는 곳마다 집안일은 그녀의 몫이 되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손이 다 텄다며,

거칠어진 손등을 내게 보여주었다.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이라도 하면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단다.

“그래도 며느리 도리는 해야지.”


‘도리’라는 단어는 어릴 적부터 익숙했다.

학생으로서의 도리, 여자로서의 도리.

그리고 결혼 후엔, 며느리로서의 도리.


그 도리는 언젠가부터

‘남편과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시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일’로 바뀌어 있었다.


부부가 같은 직장인이어도

도우미는 쉬고, 며느리는 일하고,

남편의 건강은 오로지 아내의 책임처럼 여겨진다.

시어머니의 친정 행사까지 따라가면서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도리’라 부르며 받아들인다.


하지만 도리는 강요할 수 없다.

마음에서 우러날 때에야, 비로소 진짜 도리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참는다.

그게 어른스러운 선택이라 배워왔기 때문이다.


어머니 세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살아왔으니, 너도 그래야지.”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상처의 세습이다.


이제는 도리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낡은 관습을 ‘미덕’이라 포장해선 안 된다.


“이건 도리가 아니에요.”

그 말을 꺼내는 용기,

그것이 우리 세대의 도리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자잘한 일상에 쉽게 닳는다.

그래서 더더욱, 그 사랑을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이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이 사소한 일에 닳지 않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진짜 도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시어머니들이여—

며느리들이 사랑만은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그리고 새댁들이여—

며느라기 시절은 반드시 지나야 할 통과의례가 아니다.


결혼식장에서 던졌던 부케처럼—

그것이 축복이 아닌 ‘도리’였다면,

이제는 조용히 손에서 놓아도 괜찮다.


우리가 선택한 사랑에

타인의 관습까지 끼워 넣을 이유는 없다.


배우자도, 도리도—

내가 선택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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