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서 만난 동료가 있었다.
입사동기였고, 성격이 잘 맞았다.
일의 강도도, 상사 뒷담의 결도, 점심시간의 속도감까지—
우리는 꽤 많은 걸 함께 나눈 적이 있다.
퇴사 이후에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다.
“잘 지내?” “그때 그 부장 아직 있어?”
문자 몇 번, 계절에 한두 번 돌아오는 카톡으로
근근이 연결된 인연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조금은 변한 얼굴로
한적한 카페 주차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주차장에서였다.
거의 동시에 도착했는지,
나는 내 차 문을 여는 순간
바로 옆 그녀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알아봤고,
웃으며 “야, 오랜만이다!”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서로의 얼굴보다 먼저 차를 확인하는 시선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차와 그녀의 차를
서로가 인식하는 그 짧은 순간.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어머, 우리 차 똑같더라?”
정말 그 말이 그냥 반가워서 한 말일까,
생각하게 됐다.
같은 브랜드이긴 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작은 모델,
소형 해치백을 타고 있었고,
그녀는 그 브랜드의 중형 SUV였다.
등급도 다르고, 가격도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 차였다.
엠블럼은 같았지만,
누가 봐도 ‘똑같다’고 하긴 어려운 차였다.
나는 말없이 웃었다.
“그치, 같은 브랜드네.”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나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반가움이었을까?
아니면, 뭔가 더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포장한 방식이었을까?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옛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요즘 회사에서의 성과와
최근 다녀온 유럽 여행,
남편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적당히 힘을 뺀 말투로 풀어놓았다.
나는 경청했고, 웃었고,
그녀의 삶을 응원하는 척했다.
정말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 차 똑같더라?”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건 똑같지 않은 걸 굳이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이미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공감이 아니라 표식이었다.
공감이라는 탈을 쓴 과시.
‘나는 이제 이 정도야’라는 식의 암시.
그리고 그걸 내게 들키지 않고 건넬 수 있는
가장 무해한 방식이
“우리 차 똑같더라?”였던 거다.
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나 같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녀와 나 사이의 세계가
조용히, 선명하게 갈렸다.
사람의 본심은
종종 너무도 사소한 말에 실려 온다.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안다.
닮은 듯 하지만 실은 다르다는 걸.
사람은
자기가 우위에 있을 때만 ‘같다’고 말한다.
그 말은,
닮은 척 다르다는 걸
조용히 알려주는 방식이다.
나는 그걸 알아차렸고,
닿을 듯 말 듯하던 거리가
오히려 더 좋은 관계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겸손 좀 하자.
집에 금송아지가 백 마리 있어도 조용한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