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어디 새로운 곳을 갈 때면 늘 언니 손을 잡고 다녀서인지, 지금도 낯선 곳을 혼자 가는 건 여전히 긴장되는 일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일은 설레기보단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한다. 겉으론 자연스럽게 웃고 있지만, 그런 날엔 집에 돌아와 두 배로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것이 좋다. 익숙함은 곧 편안함이고, 편안해야만 나는 나답게 행동할 수 있다.
그렇기에 ‘친구’는 내게 편안함을 주는 존재다. 새로운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 덕분에, 지금 곁에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먼저 손 내밀어 준 인연들이다. 그래서 더 애쓰며 소중히 여겨왔다.
하지만 관계란 묘한 것이다. 내가 잘하려고 하면, 그 진심에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날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대하는 이도 있다. 여럿이 있을 땐 내가 한 말을 못 들은 척 넘기고, 내 의견은 늘 묵살하면서, 정작 부탁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해 오는 그런 친구들 말이다.
친한 사이일수록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관계가 단단해진다고 믿는다. 함부로 대하는 건 친밀함의 증거가 아니라, 그저 무례함일 뿐이다.
더 답답한 건, 그런 상황에서 침묵하고 있는 나 자신이었다.
“너 이사했으니까 말인데, 나 같으면 그 동네 못 살았어. 너무 별로였잖아.”
“너 오늘 많이 신경 썼니? 화장이 이게 뭐야, 하하하!”
“이게 새로 산 옷이야? 신기하게 이런 걸 고르네.”
“공을 왜 그렇게 쳐? 개샷이네.”
말의 뉘앙스란 게 있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이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건 말속에 깔린 무시와 조롱 때문이다.
기분 나쁜 말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어느 날은 정말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생각 없이 하는 너의 말들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
그 한 마디쯤은 해야겠다고.
그런데 곱씹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그 친구를 함부로 대한 적이 없는데, 그녀는 자신의 언행을 정말 모르는 걸까? 생각이 없었던 게 진심일까? 그렇게 확신할 수가 없었다. 결국, 말하겠다는 결심은 또다시 무너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실마리는 내 손에 있었다.
그 친구가 나를 조롱하고 함부로 대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스스로 펼쳐놓은 판 위였다는 것을. 기분 나쁘면 안 보면 되고, 불편하면 거리를 두면 되는데, 나는 계속 연락했고, 계속 만나줬고, 계속 참고 있었다.
굳이 친구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날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멀어지면 된다.
멀어지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나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안다면, 그런 감정은 사치다.
어릴 적엔 친구끼리 티격태격 말싸움도 하고, 흉도 보고, 한바탕 쏟아붓고 나면 다시 웃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른이다. 이제는 알아야 한다. 상처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다.
내 일상에 조용히 스며드는 존재가 친구다.
내 일상을 방해하고 상처 입히는 존재는 빌런이다.
안 그래도 트롤이 넘치는 세상이다.
빌런은 이제 그만 꺼져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