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와 지방 출장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전날, 기차 시간에 맞춰 아침 약속을 잡고 나서, 내가 가볍게 물었다.
“혹시 아침 못 먹고 나오면, 내가 삶은 달걀이라도 가져갈까?”
그녀는 잠시 뜸 들이다가 이렇게 되물었다.
“소풍 가냐?”
이건 대답이 아니라, 비꼼이다.
배려라는 말을 미리 무력화시키는 방식의 비꼼.
비슷한 경험은 여러 번 있었다.
어느 날은, 함께 퇴근하던 동료에게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오늘은 그냥 걸어갈래?”
그러자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시간 많냐?”
그냥 함께 걷자는 말이, 괜한 한가함의 표시가 되어버렸다.
순간 나는 ‘그럼 그냥 지하철 타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의도를 설명할 기회도, 분위기를 바꿀 여지도 사라져 있었다.
또 다른 날,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 잔 하자고 했더니
그는 “지금 쉴 때냐?”고 되물었다.
그 말은, 커피를 마시자는 제안 자체가
일에 소홀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듯했다.
별 뜻 없이 던진 한 마디가, 되물음 하나로
게으름처럼 낙인찍히는 순간이었다.
되물음은 겉으로는 질문의 형식을 띠지만, 실은 묻지 않는다.
듣고 싶은 것도, 이해하고 싶은 것도 없다.
되물음은 단지 묻는 ‘척’ 일뿐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건 의문이 아니라 판단이다.
“넌 왜 그렇게 생각해?”가 아니라,
“넌 왜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해?”라는 전제를 품고 있다.
말투는 부드럽지만, 그 말 아래에는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선언이 조용히 깔려 있다.
되물음은 질문의 외피를 쓰고, 판단을 감춘다.
상대의 말을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실은 그 말을 틀렸다고 은근히 판정 내리는 방식이다.
정답을 갖고 있는 쪽만이 쓸 수 있는 말투.
되물음은, 권력이다.
관계를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질문’을 좋아한다.
질문처럼 보이는 말로 타인의 판단을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의 기준을 자연스럽게 들이민다.
되물음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멈추게 한다.
그건 말이 아니라 암묵적 판결문이다.
이런 되물음에 굳이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싸움에 내 감정을 걸지 않기로 했다.
이기려는 말 앞에서 굳이 져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 그냥 니가 맞는 걸로 해.
니 똥 굵은 걸로 하자.
그게 훨씬 덜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