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by 세련된미식가 세미

계약직으로 다닐 때였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 중에는 나보다 연상인 안경 낀 언니와 단발머리 언니가 있었다.

둘은 동갑이었고, 말 한마디 없어도 기싸움은 늘 팽팽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맞추는 역할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점심시간, 메뉴를 정해 주문할 때 한 사람은 “젓가락 세 개 주세요”,

다른 한 사람은 “혹시 모르니까 네 개요”라고 한다.

누구 말을 듣나 보자는 눈빛이 곁들여진다.


어처구니없지만, 뭐 이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었다.

“젓가락 서너 개 주세요”라고 말하면 그만이었고,

어차피 몇 개를 줄지는 음식점 직원의 몫이었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안경 낀 언니는 자주 혼잣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들이 하나같이 독했다.

단발머리 언니가 머리띠를 하고 오면,

“머리띠 한다고 다 어려 보이는 건 아니구나.”

어떤 날엔, “여기 똑똑한 사람만 뽑는 건 아니네.”

들을 사람은 다 아는데, 정작 본인은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라고 빠져나갈 수 있는 거리.

겨냥은 명확하지만, 책임은 모호한 말들이었다.


결국 어느 날, 단발머리 언니가 폭발했다.

“지금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똑바로 하세요.”


그날 이후, 타깃은 나로 옮겨왔다.

공격적인 말은 없었다. 하지만 늘 ‘애매한 말’들이 나를 향해 흘렀다.

누구에게 했는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에게 했는지는 다 아는.

그런 말은 오히려 명확한 비난보다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마음속에 걸리면서도 반박하기 어려운 말. 그 교묘함이 사람을 잠식했다.


그래도 나는 참았다.

내가 예민한 걸까 싶어서. 괜히 말해봤자,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라며 발뺌할까 봐.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다 회식 날이 왔다.

여자 과장님 옆에 앉아 잔을 따르던 나에게, 그녀는 또 한마디를 툭 던졌다.

“누구는 엄청 잘 보이려고 애쓰네~~”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 순간, 과장님이 말했다.

부드럽지만 선명하게, 마치 칼날처럼 단호하게.


“지금 농담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한마디에 공기가 바뀌었다.

웃으며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무례한지를 깨닫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종종 그런 말을 들으면 그냥 웃고 넘긴다.

괜히 예민하다는 말 듣기 싫어서, 분위기 깰까 봐, 어물쩍 넘긴다.

하지만 그 침묵은 곧 허락이 된다.

“그 정도는 웃어줘야지”라는 면죄부가 되어, 다음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경계를 그어야 한다.

그 말이 상처였다는 걸, 웃으며 들을 말은 아니라는 걸, 분명히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도 그 말이 ‘농담’이 아니란 걸 안다.


“너 진짜 월요일 같구나.”

“너 되게 떫은 감 같다.”


웃기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듣고도 그냥 넘기지 말라는 얘기다.


이제는, 나도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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