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들이 붓는다.
바람도 어찌나 센지, 이 육중한 몸이 바람에 날아갈 지경이다.
새벽 내내 빗 소리가 요란했다.
아침에 창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우산 없이 걷고 있었다.
‘소강상태인가?’싶었다.
‘이 틈에 얼른 가자!’
딸을 킥보드에 태우고, 우산 하나만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하지만 막상 밖으로 나서자, 제법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딸을 먼저 보내고, 우산을 챙기러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잠시 뒤, 우산을 들고 나오니, 딸아이가 울먹이며 서 있었다.
“엄마, 왜 전화 안 받아…”
강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혔다.
“아고, 미안. 이건 엄마가 쓸게. 네가 이걸 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번째 우산도 뒤집혔다.
“나 학교 안 갈래!”
“비 온다고 안 갈 순 없지. 다른 우산 하나 더 챙겨서 가자.”
세 번째 우산을 들고 바람을 뚫어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교문이 닫혀 있었다.
쪽문으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담임 선생님께 하이톡을 보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비바람에 우산이 망가져 지각했어요.”
전쟁이 따로 없다.
그 순간,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였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비도 오는데, 학교는 무슨… 그냥 들어가 쉬어.”
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무렵 외할머니와 살았다.
엄마는 지방에서 장사를 하느라 바빴고,
나를 서울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친정에 맡기셨다.
할머니는 쿨해도 너무 쿨한 분이었다.
그 시절의 할머니라면, 단호하게 “학교 가지마!”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내 새끼는 힘들면 안돼.’였다.
날씨가 흐리면 등교를 막고, 숙제가 하기 싫다 하면 안해도 되었으며-가끔은 대신 해주시기도 했다.
누가 과자를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더 좋은 걸 사서 손에 쥐여주셨다.
어릴 땐 그런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줬고, 담임 선생님께 촌지도 챙겨주셨던 분.
나는 할머니를 여전히 사랑한다.
하지만 가끔 돌아보면, 초등학교 2학년까지만 할머니의 손에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시간이 더 길었다면, 지금의 내게 ‘책임감’이나 ‘근성’이라는 단어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퍼주고, 힘든 꼴은 못 보는 육아는 너무 따뜻하지만, 때론 날카로움이 부족하다.
아직도 아흔 넘은 어머니께 기대는 외삼촌들을 보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쩌려고…’ 하는 걱정이 앞선다.
사랑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무조건 퍼주는 사랑, 나를 희생하는 사랑, 강요하는 사랑….
그런데 내 아이가 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언젠가를 생각하면,
내가 물려줘야 할 건 결국 ‘스스로 살아가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 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하되,
자립심과 책임감을 함께 길러주는 것,
그게 부모의 몫 아닐까.
비가 온다고 학교에 가지 않는 게 아니라,
비를 뚫고서라도 가야 하는 것.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피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결국, 그걸 뚫고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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