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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학교, 아이의 추첨

by 담유작가


아이와 함께 사립 초등학교 전입 추첨에 다녀왔다.


그런데 마침 학교가 공사 중이라, 교내 주차는 불가능했다.


이리 저리 돌다 우연히 찾은 곳은 놀랍게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주차장이었다.




내가 재학 중이던 시절엔 막 주차장과 운동장을 짓는 중이라, 우리는 옆 근린공원에서 체육 수업을 해야 했다.


그렇게 지어진 주차장에 오늘 처음으로 들어가본 것이다.




“와, 여기 너무 낡았어. 엄마가 학교 다닐 때 만든 주차장인데, 지금은 여기 저기 글씨도 다 벗겨졌네.”




아이와 함께 주차장 입구를 따라 나가자 교문으로 연결되었다.


“세상에, 엄마 학교 다닐 땐 우리 학교 참 예뻤거든. 파란 창틀도 그땐 참 예뻐 보였는데, 지금은 너무 얼룩덜룩하네.”




학교엔 미안한 말이지만, 속으로 ‘보수 좀 하지.’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기억 속에 곱게 남아있던 학교는, 마치 곤지암 정신병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음산하게 느껴졌다.


낡음은 때로 공포와 닿아 있는 듯했다.




“엄마, 고등학교 졸업이 몇 년도였어?”




“2000년. 그리고 입학은 1997년이었고... 하하, 1900년대, 좀 낯설지?”




“그럼 25년이나 지났잖아. 당연히 낡지. 그때랑 똑같을 수가 없지.”




아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4회 졸업생이니, 이 학교도 이제 개교한 지 30년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엔 신생학교라 건물도, 교복도 예뻤다.


학교 안엔 연못도 있어서, 다른 학교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도 난다.




세월은 사람에게만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 오래된 건물에도, 지나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근데 학교 앞은 그대로네? 이 카페만 새로 생긴 것 같아.”




아이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초코 한잔을 시켜주고 , 나는 잠시 추억 속에 잠겼다.


그 시절엔 학교 앞에 컨테이너 건물이 있었고, 그 안에 떡볶이집이 있었다.


특히 거기서 팔던 순대꼬치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이젠 그 컨테이너 건물은 사라지고, 대신 번듯한 2층짜리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전입 추첨에서 아이는 5번을 뽑았다.


이 학교는 전학을 가는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한 학기에 두 세 자리가 날까 말까 하다고 했다.


5번은 애매한 번호였다.


앞 순번의 아이들이 등록을 포기해야 우리 아이 차례가 오겠지.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곳에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짧은 추억은 다시 세월 속에 묻힐테고.




다음에 이곳에 다시 오게 된다면,


세월의 흔적이 지금보단 조금 옅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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