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의 틈 (마지막 회)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친구가 둘 있다.
한 녀석은 우중충한 검은 옷을 입고 다닌다.
그 친구는 나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며,
때로는 우울하게도 만드는 재주가 있다.
또 한 녀석은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럽다.
그 녀석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정도로 그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듣기 좋은 소리로 나를 들뜨게도 하지만, 불평불만을 끊임없이 쏟아 내기도 한다.
아무튼 꽤나 시끄러운 녀석이다.
우리 셋이 같이 다닐 때는 검은 옷을 입은 친구는
늘 앞장서 걷고,
수다스러운 녀석은 내 뒤를 바짝 따라다닌다.
앞선 친구는 내가 보는 환영(幻影)이고, 뒤따르는 친구는 내 마음의 소리이다.
저녁 늦게 퇴근하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섰습니다.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17’이라는 숫자에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며 발자국 소리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집니다.
뒤돌아보기가 민망해서 정면을 응시한 채 그렇게 가만히 서 있습니다.
신발이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누군가의 흔적이 뒤에서 느껴집니다.
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내 그림자와 맞닥뜨립니다.
그 그림자는 내가 늘 마주치는 환영과 같고, 뒤쪽에서 들여오는 인기척은 마음의 소리 같다 느껴집니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 내는 마음속 이미지, 소리와 함께 합니다.
기쁨과 만족의 모습, 고뇌하며 좌절하는 상(想)에 이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아마도 TV에서 본 장면, 어린 시절 부모의 모습,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미지가
내 안에 각인된 후 생겨나는 것일 것입니다.
그 하나가 만들어 내는 상(想)은 너무도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먹이를 찾으려 쓰레기통을 뒤지는 쥐새끼처럼 나를 잠식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어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 이미지와 소리를 ‘나’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즐겁다, 괴롭다 하는 마음, 후회와 자책, 거부하고자 하는 마음속
이미지를 쫓아 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오고 독백을 합니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 ‘배우’가 아니라 그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 일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그 영화가 펼쳐지는 ‘스크린’ 과도 같을 것입니다.
그동안 헤라클레스의 틈을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3회로 연재를 마치고, 또 다른 브런치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