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는 마음
운동관련하여 데이터 검색 중, 흥미로운 뉴스를 봤다.
“운동을 잘하는 청소년일수록 사회성이 좋고, 공감 능력도 높다.”
비슷한 맥락으로 오래전 방영했던 모 방송사의 ‘운동장 프로젝트’라는 프로그램도 떠올랐다.
열악한 운동 환경 속에 놓인 아이들에게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체육 활동을 넘어,
운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맺고, 공감 능력을 키워가는 변화를 이끌어낸다.
그런데 말이다—
운동과 공감, 정말 어울리는 조합일까?
운동은 원래 경쟁의 세계다.
누가 더 빠른가, 누가 더 멀리 가나,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운동장에 나가면 자연스레 비교가 시작된다.
어릴 적 보던 ‘달려라 하니’에서 하니는 울다가도 이를 꽉 물고 외친다.
“꼭 이기고 말 거야… 나애리…!”
그때 우리에게 운동은 곧 승부였고,
운동장에서 필요한 건 눈물 닦고 다시 달리는 근성이었다.
그런데 왜 요즘은 운동을 하면 공감 능력이 좋아진다고 할까?
운동장에서 진심으로 “잘했어~!” 해줄 여유가… 있었나?
혹은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공감한다고 하여 운동을 효율에 상관성이 있나?
이기고 지는 게 뚜렷한 공간에서, 어떻게 더 잘 이해하고, 무엇을 더 잘 받아들인다는 걸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내 수영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오랜 시간 수영을 해왔다.
매일 아침 연습을 거의 거르지 않고, 주말 쉬는날에 운동 스케줄을 항상 배정하였다.
그러던 중, 이직과 이사로 인해 수영장을 옮기게 됐다.
새로운 수영장의 팀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정기적으로 대회에 출전하고,
회원들의 평균 실력도 상당히 높았다.
그 팀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회원이 내 수영 자세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넸다.
"어깨가 좀 먼저 뜨시는 것 같아요."
"터치 후 턴 타이밍이 살짝 늦어요."
그 순간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어? 나 잘하는데? 내 자세 괜찮은데?”
나도 모르게 방어적이 됐다.
당황스럽고, 불편하고, 조금은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려
코치님의 영상으로 다시 본 내 수영 자세는...
확실히 무언가 어긋나 있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공감이 없으면, 성장은 멈춘다.
공감은 단순히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만으로는 세상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용기다.
그 조언이 내 자존심을 건드릴지라도,
그 말의 진심과 가능성을 열어두는 마음.
그게 바로 운동에서의 공감인 것이다.
피드백은 때때로 불편하다.
특히 정체기에 빠져 있을 땐 더 그렇다.
스스로는 한참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이만큼 했으면 충분하다는 자부심도 살짝 흔들릴 즈음—
그럴 때야말로 ‘제3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어디서 틀어졌는지 모른다.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단계에선, 그 몸을 다시 되짚어줄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럴 땐,
단순히 함께 운동하는 크루를 넘어,
전문가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클래스나 모임에 참여해보는 걸 추천한다.
촬영 분석, 자세 교정, 정확한 언어로 설명되는 움직임의 원리—
그 모든 피드백은
내가 갇혀 있던 감각의 벽을 깨주는 ‘외부 자극’이 되어준다.
운동 크루에서의 공감도 소중하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전문가의 객관적 시선이 큰 힘이 된다.
마무리
공감은 결국,
'내가 모르던 나'를 알려주는 모든 시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다.
운동을 오래 해도, 실력이 좋아도,
혼자만의 세계에 갇히면 어느 순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피드백을 불편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멈추고,
피드백을 공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란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성장하는 순간,
우리는 진짜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운동의 11가지 성장 법칙 10장 '공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