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이는 힘으로 성장한
결(結, 맺을 결): 표면적인 행동 이상의 깊은 성향이나 속성의 방향
사람들과의 결
운동은 혼자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조용히 수영장을 찾고, 아무 말 없이 트랙을 걷는다.
나도 그랬다.
처음 수영을 배울때 혼자 가서 등록하고, 내 영법을 익히기 위해 한동안 집중했다.
달리기 또한 혼자 트랙과 공원을 찾아 조용히 뛰어 보았다.
시간이 지나 수영 실력이 점차 향상되어, 점점 상급반, 그 상급반으로 이동하며,
매일 자주 보는 사람이 생기고, 인사하고, 훈련 후에는 때때로 커피타임도 함께하게 됐다.
그 과정 속에서 동일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운동의 결이 다름을 느꼈다.
누군가는 조용히 훈련에 몰입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누군가는 기록에 집중하여 대회출전을 목표로 하고, 누군가는 그저 건강하게 꾸준히 하는 데 의미를 둔다.
어쨌든, 어느 정도는 서로의 결을 인자하고
어느정도의 조화를 이루며 일상의 운동을 계속 이어가게 된다.
그러나 함께 운동하는 분위기나,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 결이 맞지 않는다면,
나 자신은 소극적으로 변할 수 있고, 때로는 결국 그곳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그 안에 들어가야만 결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건강을 위해 조용히 수영을 하고 싶었지만
팀워크라는 이름으로 회식이 강요되고, 대회 출전을 위해 기록측정에 드라이브를 건다면,
혹은 대회 나가 많을 경험을 해보고 싶지만, 자극이 없는 행수(행복한 수영)만 한다면,
성장은 커녕 불만족으로 중이 절을 떠날 수도 있다.
‘결’이 맞아야 한다.
곁이 맞는 사람들과, 곁이 맞는 속도와 분위기 속에서만 운동은 진짜로 지속 가능해진다.
결이 맞지 않으면 어긋난다.
운동 참여는 고역이 되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오히려 운동의 벽이 되기도 한다.
결이 맞는 사람들과 운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자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사회와의 결
비단, 그 결의 중요성은 사람들 사이 뿐만 아니라, 운동과 세상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시티런.
도시 한복판을 달리며,서울의 배경과 사람들의 에너지가 어우러진 그 장면은
생각만으로도 운동에 동기부여가 될 만하다.
혼자 달리기 뻘줌한 도시 중앙을 여럿이 뛴다면 얼마나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겠는가?!
하지만 그 길을 지나야 했던 주민들에겐
소음과 불편, 그리고 러너들의 스피드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도 있다.
“왜 꼭 우리 동네여야 해?”라는 볼멘소리가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2024년 10월, 반포종합운동장엔 이런 문구가 붙기도 했다.
“5인 이상 달리기 금지”
운동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열정이 때론 누군가에겐 불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운동을 하기 위해 당찬 마을을 먹고 나온 스포츠맨,
즐거운 저녁을 보내기 위해 산책나온 가족들,
너무나도 결이 다르다.
서로 다른 결이 한 공간에 놓이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이 간극은 어떻게 좁혀야 할까?
운동을 위해 당차게 달리는 사람의 에너지와,
단지 일상의 평온을 즐기려는 사람의 온도차를
누가, 어떻게 맞춰야 할까?
간단하다.
자극적인 리듬을 가진 쪽이 더 민감하게 주변을 인지하고,
속도를 낼 수 있는 쪽이 더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마치 차와 자전거가 함께 달릴 때, 차가 자전거를 배려하듯.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할 땐, 자전거가 보행자를 배려하듯.
그래서 우리는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정중하게
운동에 존재하는 모든 주변들과 결을 맞춰야 한다.
함께 하되, 얽히지 않기 위해.
얽히되, 무겁게 끌어당기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곁에서 나란히 나아갈 수 있는 거리.
운동에 대한 철학과 목표는 달라도 결이 닿는 순간이 있다.
그 짧고도 선명한 순간이
내 운동을, 내 마음을, 그리고 내 삶을 조금씩 더 단단하게 만든다.
마무리
운동은 결코, 나만의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례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주변과 결이 닿을 때,
그리고 나의 운동이,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과 닿을 때
그때 우리는 진짜로 성장한다.
운동의 11가지 성장법칙 9장 – 결(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