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다, 잘 간다

나의 마지막 날, 세상은 이랬으면 좋겠다

by 수아롬


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나고,
잃어버리기 위해 소유하며,
떠나보내기 위해 만난다.



대학 시절, '수의 디자인' 보고서를 쓴 적이 있다.

공부에는 한참 불량했던 때였지만, 『가실 때는 왕처럼 가소서』라는 부제가 지금도 기억이 날 만큼 그 보고서에는 유난히 정성을 쏟았었다.


‘고인은 평생 힘들게 세상을 살다 가시니, 마지막 길만큼은 가장 고귀하고 화려한 옷으로 위로를 받으셨으면...’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하얗고 풍성한 웨딩드레스를 변형한 한복 형태의 수의를 디자인했고, 명복을 비는 글귀를 금박으로 새겨 넣었다.

지금 돌아보면, 왜 나는 ‘고인은 평생을 힘들게 살다 가신다’ 고만 여겼을까?


웃음이 나는, 참 엉뚱했던 생각이지만, 당시엔 만족감에 도취되어 이 보고서를 들고 앙드레김 선생님의 회사에 찾아가면 당장이라도 디자이너로 채용될지도 모른다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었다.

‘바로 출근하라고 하면 학교는 어쩌지?’ 같은 야무진 고민까지 곁들여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적어도 나는 행복하고 즐겁게 잘 살다 가니 화려한 옷의 위로는 필요 없다. 아쉬움도 없고, 미련도 없다.

설령 필요하다 한들, 죽은 뒤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동전 한 닢 가져가지 못한 채 떠나는 게 세상의 이치인데.


어느 날, 아들이 전화로 물었다.

“엄마, 친한 형 부모님께서 자식 결혼식 날 영정사진을 찍으신다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순간 반짝였다.

“아! 너무 좋은 아이디어네~!”

자식의 결혼식 날, 예쁘게 단장하고 얼굴 가득 행복을 머금은 순간이라면, 내 안에 가득 찬 사랑과 기쁨이 사진에서 솔솔 새어 나올 것만 같았다.

그건 정말이지, 완벽한 영정사진이다.


자, 사진은 준비되었고,

이제 장례는 가족끼리만 소박하고 간소하게 치렀으면 한다.

3일장, 5일장 같은 격식은 내려놓고, 하루이틀 안에 조용하고 차분히 마무리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잠시 머무를 그 공간엔 좋아했던 오르골 캐럴이 잔잔히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눈물 대신 웃음으로 나를 기억하고, 서로의 추억을 함께 나누며 따뜻한 시간 속에서 즐겁게 머물 수 있기를...


내 몸은 평소 편히 입던 옷을 깨끗이 입혀 남김없이 잘 태워주길.

그리고 뿌릴 수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흩날려 보내주기를 바란다.

혹시라도, 세상 어딘가에 내가 잘 떠났다는 것을 꼭 전해야 할 분이 계시다면,

그저 이 글을 대신 전해주었으면 한다.




잘~ 살다 잘~ 갑니다!

이곳에서도 웃으며 씩씩하게 살았으니,

또 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그렇게 지내고 있겠습니다.

눈물은 인연의 소중함에 그 감사한 마음을 함께 담아서

제가 고이 품고 가져가겠습니다.

부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미련이 남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찾아오실 필요도, 노잣돈도, 꽃도 다 필요 없습니다.

그저 먼 하늘 바라보고

"잘 가라!" 미소 지으며 인사해 주시면,

저도 손 한 번 흔들며 웃으며 가겠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곁을 내어주셔서



죽음은 늘 저와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라고만 여겨왔습니다.

그러다 2021년 겨울,
코로나로 남편을 잃을 뻔했던 시간을 지나면서 이후 죽음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 깨달았습니다.
내가 준비하지 않으면, 떠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의 짐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를.


누구도 자신이 떠날 날을 미리 알지 못합니다.
언제든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속 생각과 더불어 저는 구체적으로 연명치료에 대한 뜻, 남겨질 유산에 대한 정리까지 글로 남겨보기로 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분명 무겁고, 꺼내어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마주해 보면서, 삶의 귀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생각들을 차곡차곡 되새겨보며 글을 통해서 바람을 남겨둘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허락해 봅니다.

그것은 제가 삶을 더 잘 살아내기 위한 애씀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양가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글을 통해 그분들의 마지막 마음을 미리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기록들은 헤아릴 수 없는 위로이자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기록을 남겨보시길.

그리고 부모님이 곁에 계시다면, 그분들이 바라는 마지막은 어떤 모습인지 조심스레 여쭤보기를 권해봅니다.


떠나면, 더는 물을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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