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자녀와 지켜야 할 여백, 한 칸 1

정서적 경제적 독립

by 수아롬


부모라는 이름의 잘못된 내비게이션

어느 날 운전을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자꾸만 길을 재탐색하며 “우회전하세요”, “좌회전하세요”라고 쉴 새 없이 지시했다.
나는 유난히 길치에 방향 감각도 서툴다. 게다가 초행길이니 어디쯤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 길이 맞아’하며 뚝심 있게 가고 싶었지만, 뭘 알아야 고집도 부릴 수 있는 법.
금세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급기야, 6차선 도로 맨 오른쪽 끝 차선에 있는 나에게 1차선까지 이동해 당장 다음 신호에서 유턴을 하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할 수 없는 상황에,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결국 골목에 차를 세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무작정 따르는 것과 스스로 판단하는 것 중간쯤, 그 어딘가에서 멈췄다.
손가락으로 지도를 확대하고 줄이며 살펴보니, 그냥 직진해도 되는 길이었다. 순간 괜히 약이 올랐다.

내 잘못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하고 판단해 선택할 수 있는 도구여야 했다.
기계는 단지 곁에서 방향을 알려주는 조력자일 뿐, 길을 가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였어야 했다.


이 경험은 문득, 자녀와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자녀의 삶을 대신 운전하려는 나 자신을 본 것 같았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녀의 인생에 수시로 개입하며,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을 지시하곤 한다.

“이 길로 가야 해.”
“그렇게 하지 마.”

하지만 이런 통제는 자녀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거나,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는 힘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

내비게이션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점점 방향 감각을 잃고, 스스로 판단하고 길을 찾는 능력도 함께 퇴화되듯이.

마치 모든 걸 대신해 주는 도구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감각과 기억력이 무뎌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늘 부모가 먼저 길을 제시하고 간섭하게 되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힘은 자라지 못한다.

때로는 멀더라도 돌아가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비게이션이 틀렸다고 느껴질 때, 스스로를 믿고 방향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성인 자녀는 이미 어른이다.

인생의 길은 수많은 변수와 갈림길로 가득하고, 그 길을 선택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녀 ‘자신의 몫’이다.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는 지시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

결정자가 아니라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는 조력자일 것이다.

조금 더 먼저 살아봤다는 이유로, 자녀가 덜 힘들기를 바라는 마음에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자칫 아이의 권리와 성찰할 기회를 빼앗지는 말아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부모가 된 것은 그저 살다 보니 얻은 이름일 뿐, 삶의 정답을 안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그사이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가 믿는 길이 틀린 길로 바뀌었을 수도, 더 나은 길이 생겼을 수도 있다.
자녀가 지나고 있는 그 길을, 우리도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했기에, 이제는 아이들도 스스로 겪고 배울 수 있도록 멈춰서 지켜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부모와 자녀 사이에 꼭 필요한 ‘심리적 여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알고 유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자녀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말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그때마다 불편한 감정의 탑을 켜켜이 마음속에 쌓아간다.

그러나 그것은 독립의 신호이며, “나를 믿어달라”는 간절함이 숨어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오면, 삶이라는 무대에서 아이가 주인공이 되도록 우리는 조용히 물러나, 자기 힘으로 일어선 자녀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모의 분리불안은 결국 자녀의 독립과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사랑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도록 믿고 놓아주는 때를 아는 것.

그리고, 묵묵히 견딜 수 있는 마음이 진짜 어른의 사랑 아닐까.



이야기가 길어져 두 편으로 나누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기다림’이라는 여백 속에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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