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다독여 줄 거라 믿었지만, 어떤 그리움은 오히려 더 선명해집니다.
제 반려견, '딱지'는 작년 가을부터 폐에 물이 차는 원인 모를 병이 생겨서 많이 아팠습니다.
그해 겨울, 흉수를 뺄 수 있도록 몸 안에 ‘포트’라는 장치를 삽입하는 수술도 받았어요.
이후로는 5일에 한 번씩 가녀린 몸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고 폐에 가득 찬 물을 빼는 처치를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2kg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몸으로 그 모든 걸 견뎌내는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딱지는 점점 더 마르고, 체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숨을 헐떡이고 응급 상황이 올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잦아졌고, 해줄 수 있는 게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그저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걷지도 못하고 힘들어하던 딱지를 안고 약을 먹이던 중,
저는 아이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많이 힘들면 가도 돼.
우린 괜찮으니까, 이젠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가렴.”
그 말은, 처음으로 정말 어렵게 진심을 다해 꺼낸 말이었습니다.
더 이상 붙드는 건 제 욕심이라고 생각이 들어서였지요.
그리고 그 말이 전해졌던 걸까요.
바로 다음 날, 딱지는 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저는 아이가 숨을 거두기 불과 30분 전의 순간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딱지의 눈빛이 다시 맑아졌습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그동안 반응하지 않던 소리에 기적처럼 귀를 기울였으며,
힘없이 누워 있던 몸도 잠시 꿈틀거렸습니다.
그 작은 몸짓에
‘혹시 다시 괜찮아지는 걸까?’
‘며칠만이라도 더 함께할 수 있을까?’
하는 환희와 희망이 마음속에 피어올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작별 인사를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는 걸 저는 뒤늦게야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남은 힘을 다해 이별을 건네고 딱지는 조용히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습니다.
갑작스레 짧은 경련이 일었고, 작고 여린 몸을 몇 번 들썩이더니 이내 숨이 가빠지며 제 품 안에서 조용히 멈춰버렸습니다.
장미꽃잎처럼 예뻤던 혀는 하얗게 그 빛을 잃어가고, 초점 없는 눈은 점점 커지며 멈춰 있었습니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고 믿었기에, 혼자 떠나는 길이 외롭고 무서울까 봐서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함께 부르던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딱지야, 사랑해. 고마웠어. 이제 아프지 마. 빛이 보이면 따라가. 헤매지 말고, 뒤돌아보지 말고...
'쎈'오빠를 찾아가.
내 이름은 딱지~! Ddak…”
하지만 울음이 복받쳐 올라,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도 야위어 버린 작은 몸, 그 아이를 품에 안고 흐느끼는 저를 바라보던 남편이 끝내 꾹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나도...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봐도 돼?”
그렇게 딱지 이야기, 첫 번째 글을 쓰고 나서 꼭 일주일 후.
햇살 눈부신 4월의 어느 봄날,
겨우 매달려 있던 마지막 벚꽃 잎이 조용히 바람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날,
14년을 가족으로 살아온 딱지는 마지막으로 제 품에 안겨, 고요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참 고귀한 모습으로 생을 마쳤습니다.
천사 같은 아이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마치 우리를 걱정하듯,
편안한 표정과 눈빛으로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괜찮아요. 울지 마요. 행복했어요. 사랑해요.”
작고 하얀 강아지.
딱지는 우리에게,
가족이었고, 선물이었고 귀한 인연이었습니다.
딱지야, 고맙고... 사랑한다.
우리의 곁을 너의 온기로 따뜻하게 채워줘서.
정말 정말 고마웠어.
이제는 건강하게 ‘쎈’ 오빠와 신나게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지내렴!
이제 저는 반려견을 가족으로 또다시 인연을 맺지 않을 겁니다.
그 조그만 아이가 제 가슴에 남기고 간 사랑이 너무 커서,
떠난 자리... 그 따뜻했던 존재가 남기고 간 텅 빈 구멍이 생각보다 커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부재’에 걸려 넘어집니다.
눈물 버튼이 눌리는 건 순식간이라 그냥 숨을 쉬다가, 문득 돌아보게 되다가, 또 울고 맙니다.
아무리 그 아이의 시간이 사람보다 짧고,
그런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이라 하더라도,
아직은 이성으로도, 감정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법을 잊은 채 딱지가 없는 시간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예요.”
많은 이들이 말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시간이 과연 마음을 ‘해결’ 해 줄 수 있는 걸까요?
그저 아픔을 덜어낸다는 이름으로 기억마저 흐리게 만들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어떻게 이 가슴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산산이 부서져, 그 파편들이 날을 세운 채 가슴속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저, 제가 부르지 않아야 그 아이가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삼키고, 또... 참아 봅니다.
딱지와 함께 머물던 그 방에 들어서는 일이 괜스레 주저됩니다.
그곳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고, 달력도 다음 달로 넘기지 못한 채 그대로입니다.
숨결과 추억의 향기가 구석구석 배어 있어,
오늘도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게 됩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습니다.
부딪혀 보려고 사진도 곳곳에 두어 보았고, 괜찮은 척 씩씩하게 지내도 보았습니다.
달력도 5월로 넘겨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소용없다고 말하듯 시간이 지나도 짙어지는 기억 속에서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다잡아 보려 해도 문득 스며드는 기억 하나에 마음이 무너지고,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눈물은 제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요즘은 가끔 나조차 낯설게 느껴집니다.
부지런히 살던 내가,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곤 합니다.
좋아하던 책도, 마음에 닿지 않아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고 되돌려 보다 결국 덮어버립니다.
또 잠들지 못한 채, 고요한 새벽을 지납니다.
오롯이 그 아이만 빠져나간 세상이 납득이 되지 않아 그저 흘러가는 것도, 살아내는 것도 버겁기만 합니다.
딱지가 없는 시간은 유난히 무겁고 느리게 흘러
자판 위의 ‘DEL’ 키처럼,
이 하루라도 그냥 삭제해버리고 싶어집니다.
자꾸만 손으로도, 마음으로도 딱지를 더듬습니다.
없는 걸 기어이 확인하고,
여전히 그 아이를 부르고 있는 나를
문득, 흐릿한 머릿속에서 만납니다.
떠났다는 사실보다
사라지지 않는 그리움이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덮어줄 거라 믿었는데,
기억에 머문 따뜻했던 숨결과 포근함에
가슴이 자꾸만 베이고 맙니다.
이별이 끝난 줄 알았지만,
그리움은 그렇게 멈춰 여전히 머물고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했던 봄날.
이제 저에게는 따뜻함마저 잔인함이 되어버린 시린 계절, 아픈 봄.
지금... 저는 어둠 속 끝이 없는 터널에 갇힌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숨결처럼 남은 발자국이 살며시 길을 인도해 줄 거라 바래봅니다.
그래서 오늘도,
깊은 한숨에 그 믿음을 실어 조용히 내쉬어 봅니다.
다행히도 딱지는 떠나기 이틀 전,
제 품에 안겨 마지막 호숫가 산책을 함께했어요. 그리고 짧지만, 우리 둘만의 노래도 나눴습니다.
딱지가 세상에 머무는 동안 완성했던 두 편의 이야기는 이미 브런치 스토리 단편으로 올려두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내 작고 하얀 친구, '딱지' 1 https://brunch.co.kr/@suarom/5
내 작고 하얀 가족, '딱지' 2 https://brunch.co.kr/@suarom/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