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어른의 모습_ '삶의 향기'
스스로 소중히 여기며 쌓이는 '생활의 향기'를 돌아본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나이에 갇히지 않고, 삶에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태도에서 피어나는 향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여든다섯.
연세에 비해 눈에 띄게 젊어 보이는 어르신과 상담하게 되었다.
밝고 생기 있는 인상 뒤에는, 오래도록 품어온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머님은 어릴 적 배우지 못한 것이 늘 한으로 남아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다 60대에 대장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못 하는 일’이라며 포기했던 것들을 하나씩 시작했다고.
복지관에서 피아노를 배워 바이엘을 끝냈고,
컴퓨터도 1년을 배우니 기본적인 작업은 이제 혼자서도 거뜬하다며, 덕분에 스마트폰 사용도 두렵지 않고, 각종 앱 조작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다 되더라고요." 그분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웃음이 번졌다.
배우고 싶은 것도 여전히 많고, 봉사활동도 계속하고 싶다며, 요즘은 잘 들리지 않는 소리 때문에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많은 어르신들이 보청기를 낯선 기계로 여기며 ‘이 나이에 꼭 필요한가’, ‘잘 쓸 수 있을까’ 망설이곤 하지만, 이분은 오히려 호기심과 열린 마음으로 상담에 임하셨다.
적극적인 태도가 결국 몸에 밴 삶의 향기로 이어지고, 젊고 빛나게 만드는 비결처럼 느껴졌다.
그런 삶의 자세 덕분일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85세의 연로한 모습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생기 어린 얼굴에, 반듯한 자세와 또렷한 말투까지.
배어 나오는 향기는, 마음속에 피어 있는 태도의 결로 전해지고 있었다.
평소 나이의 숫자에 무심했다.
때론 내 나이도, 부모님 나이도 헷갈릴 때가 있을 정도로.
그래서일까. 자주 나이에 대한 착각을 한다.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내 나이가 많은 줄 믿고 살다 보니 또래보다 어른스러워서 ‘애어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 말이 마치 칭찬처럼 느껴졌던 시절도 있었다.
스무 살, 서른 즈음에는 몸과 마음이 나이만큼 자랐다.
그 무렵에는 나름 인생과 보폭을 맞춰가며 살았다.
마흔을 넘기고부터는 거울에 비친 얼굴은 세월을 품고 있었지만, 신체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잦아졌다. 여전히 마음 한쪽 어딘가는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거나 부담스러운 일 앞에서는 나이가 많은 척 ‘내 나이에 굳이?’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곤 했다.
김형석 교수님은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인생의 황금기는 60세~75세라 하셨다.
노력만 하면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에는 한계가 없다고 하시며,
우리 사회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가 많다고 지적한다.
40대라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으면 노쇠해질 수 있고,
50세부터는 제2의 마라톤을 달린다는 각오로 재출발하라고 조언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대 수명은 늘어나며, 의식과 신체는 이전보다 훨씬 젊어졌다. 그럼에도 종종 과거 세대의 기준에 머물며, 스스로를 가두곤 한다.
오래된 생각의 틀에서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어느새 ‘내 삶은 내리막’이라는 그늘진 믿음에 빠지곤 한다.
이제는 스스로 나이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지금 나는, 예전보다 더 단단하고, 더 부드럽고, 더 열려 있다.
상상으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지 않다는 것을 상기하며 생기 있게 살아가자고 다짐한다.
나이 듦이 점 하나로 끝나는 문장이 아니라, 향기로 번져가는 문장의 쉼표가 되기를.
내 나이 여든에는,
삶을 주도하며 살아온 시간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어,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다정한 모습으로 전해지는 ‘마음의 향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