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여든에는, 향기 나는 어른이고 싶다 1

꿈꾸는 어른의 모습

by 수아롬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에도 표정에도, 머무는 공간에도 다정한 내음이 감돌기를 바라며,
노년의 삶을 세 가지 향기로 나누어 써 내려가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 ‘생활의 향기’ 편입니다.




생활의 향기 _작은 정성과 습관이 쌓여 나를 말없이 드러내는 기운


병원에서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분들을 위한 청력 검사를 진행한다.

검사실은 방음 처리를 위해 창문이 없고, 크기도 매우 작다. 그래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검사를 하다 보면, 환자의 체취가 고스란히 코로 전해진다.

유독 냄새가 강한 분의 경우,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수록 더 깊은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다. 티를 내면 어르신이 마음 쓰실까 봐 최대한 조심하려 애쓰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검사가 빨리 끝나길 바라게 되기도 한다.


반면, 가까이 가기만 해도 기분 좋은 내음이 전해지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머리부터 옷차림, 신발까지 깔끔하게 정돈된 분들.

그런 분을 대할 때는 향기와 함께 전해지는 단정한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들었을 때 꼭 ‘은은한 향이 나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왔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우리는 누구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 공간만의 ‘향기’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시골 할머니 댁의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오래된 가구 냄새와 메주 내음,
부모님 집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공기의 결,
친구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문득 코끝에 맴도는 기운.
그렇게 각자의 집은 머무는 사람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냄새를 품고 있다. 향수처럼 인위적이지 않고, 햇살이 머무는 자리에서 나는 듯 그윽하고 따뜻한 냄새.

공간 사이로 흐르는 온순한 기분 같은 향기. 그런 향이 공간에 배어 있다면, 그곳은 마음에도 오래 남는다.


좋은 향기를 풍긴다는 건 단지 외적인 정돈만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대하는 태도, 나 자신을 다루는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었다.

방송인 홍진경 씨가 “어떻게 하면 우습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녀의 담담한 대답은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저를 우습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시선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제가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은, 남에게 보이는 옷이나 자동차보다 매일 내가 베고 자는 베개, 입을 대고 마시는 컵, 정돈된 집처럼 생활하는 공간의 작고 사소한 것들에 정성을 들이는 거예요.”

나를 정성껏 대하는 하루,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상을 채워 나감이 결국 자존감으로 쌓인다는 그녀의 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요즘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을 켜고 타인의 반짝이는 일상과 마주한다. 화려한 여행, 멋진 차, 완벽한 라이프스타일, 심지어 접시에 담긴 음식까지 예쁜 각도로 찍어서 보여주는 세상. 그 속에서 점점 ‘보이는 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진짜 나’를 소홀히 하게 된다.


하지만 향기를 머금은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녀의 말처럼,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고 다정하게 대하는 손길에서부터 시작된다.
깨끗하게 정돈된 이불,

살결에 닿는 부드러운 잠옷,

말끔하게 정돈된 자리,

그리고 ‘여기, 내가 잘 머물고 있다’는 안도감.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공간, 나를 위한 태도.

그 부지런함이 하루하루 쌓이면, 여든 즈음에 나 자신도, 머무는 공간도 은은한 기운을 머금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향기를 품고 곁에 머물고 싶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여든 즈음, 말 한마디에도 따뜻한 향기가 배어 있는, 곁에 머물고 싶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삶을 감싸는 두 번째 향기와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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