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테리어
이 글은 '배움으로 채우는 삶'이라는 주제로 세 편에 걸쳐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이야기, '배움으로 나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입니다.
병원 인테리어를 완성하고 만 8년이 지났다.
여전히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큰 하자 없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환자들을 맞이하는 따뜻한 공간이 되어 주고 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식 인테리어 사업자로서 또 다른 길을 걸었다.
사촌 동생의 개원, 병원 리모델링, 의사회 사무실 인테리어까지...‘우리 팀’과 함께 몇 개의 공사를 진행했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함께 일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여전히 설레는 일이었기에 감사하며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했던 일들이었다.
몇 해 동안, 필요로 하는 곳으로 달려가 공사를 하길 수차례.
그러던 어느 날, 현장과 가까운 다른 공사장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안타깝게도 인명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깊게 전해졌다.
천장 너머, 바닥 아래 깊숙한 곳. 보이지 않는 곳에 놓인 전기 배선과 설비가 얼마나 쉽게 위험이 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무겁고 진지하게 마주하였다.
즐겁게만 해 오던 이 일이,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두려움으로 다가와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서 긴 고민 끝에...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좋아하고 아끼던 일이었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렇게 인테리어 일을 천천히 정리하고,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길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다시 배움 앞에 섰고, 청각사 공부를 시작했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 버겁게 느껴지는 공부량, 낯선 분야를 또다시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망설임 위에는, 단 하나의 마음이 있었다.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렇게 다시 ‘배움’을 선택했다. 벽은 높았고, 느리고 서툴렀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해냈다.
지금은 병원 한편에 작은 청각 상담실을 마련해 소리가 잘 안 들리는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에게 꼭 맞는 ‘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감사한 건, 이 일이 남편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모든 여정에, 언제나 남편이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말없이 발을 맞추어 나란히 걷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얼마나 꽉 차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묻는다.
“다음 생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나는 주저 없이 떠올린다.
가슴 뛰는 현장일을,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상상이 점점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느꼈던 짜릿한 희열,
부품, 자재, 색상 하나까지 모두 내 손끝을 거쳐 완성되어 갈 때, 단순히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완성해 가는 공간들이 나에겐 굉장한 기억이었다.
정해진 답이 없기에,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시간들.
현장에서 함께 일한 반장님들, 손발을 맞춘 팀원들과의 협업 역시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서로 다른 도구와 기술, 속도와 방식이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웅장한 오케스트라처럼 가슴 뛰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각자의 손끝에서 시작된 노력이 모여, 작품으로 완성될 때 우리는 말없이 마음으로 엮였고,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그 안에서 느꼈던 벅참과 설렘은 내 인생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주저 없이 말하고 싶다.
상상을 현실로 옮겨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제대로 다시 실현시켜보고 싶다고!
“진짜 건축가가 되어보고 싶다고.”
몇 해가 지난 지금도, 함께 공사했던 분들과 여전히 안부를 나누며 지냅니다.
“근처 왔어요, 현장에 한 번 놀러 와요.” 지나던 길에 전화를 걸어주고, 누군가는 가만히 병원에 들렀다가, 작은 고장 하나를 슬쩍 고쳐주고 갑니다.
한 번은 “베란다 습기 때문에 걱정이에요” 했더니, 페인트 반장님이 빈 집에 다녀가셨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방습 페인트를 칠해 주시고는, “남는 페인트가 있어서요.”하며 쑥스러운 듯 넘기셨지요.
그 시절, 함께했던 모든 분들은 ‘일을 가르쳐 준 사람들’이자, ‘사람을 가르쳐 준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를 믿고, 도와주셨던 분들 덕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큰 스승 목수 배 반장님과 따뜻한 가족들,
대한민국 최고라 믿는 페인트 반장님과 이모님,
늘 바쁘지만 기꺼이 달려와 주신 유리 사장님,
말수 적지만 든든했던 금속 사장님,
그리고, 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려 애쓰신 빡빡이 전기 반장님까지.
그분들이 보여준 인내와 배려, 말없이 흘린 땀과 웃음은 지금도 마음속에 소중하게 남아 있습니다.
요즘 저는, 병원의 A/S 기사로 맹활약 중입니다.
전기온수기를 교체하고, 화장실 변기의 부속품을 갈고, 고장 난 천장등을 새 걸로 바꾸고, 공단 서식이 바뀌면 네트워크 시스템을 다시 연결합니다.
이게 다, 그날의 ‘질문’과 ‘관찰’, 그리고 ‘배움’ 덕분입니다.
현장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귀 기울였던 시간들이, 많은 분들의 넉넉한 가르침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럴 겁니다.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해 준 따뜻한 손길들과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배움으로 채우는 삶, 넓어지는 인생길’ 연재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긴 글을 함께 걸어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용기 있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