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020년 그때를 많은 세월이 지나면 다들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첫째 초등학교, 둘째 유치원에 들어가는 해였다. 아이들도 나도 많이 기대했던 새로운 생활이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번지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21세기에 이런 바이러스라니..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듯한 그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1-2주면 끝날 줄 알았다. 아이들의 입학이 줄줄이 미뤄지고 남편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에 가면.. 등등으로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학교에 가 볼 수가 없었다. 동네 언니들과도 만나지 않았다.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는 생각에 최선을 다해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학교에 갔어야 할 첫째를 위해 되도록 스케줄을 짜서 초등학교 수업시간처럼 시간을 보냈다. (둘째는 이유 없이 수업받음..) 1교시는 국어 2교시는 수학 3교시는 체육 등등..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냈었다. (열의에 넘쳤..) 그것도 3주.. 더 이상 체력도 정신력도 매번 3번씩 먹는 밥도 사이사이 먹어야 할 간식도.. 거실을 치우면 주방이 엉망이고 주방을 치우면 거실이 엉망인 그 상황들을 3주 지속했더니 너무 힘들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이놈의 바이러스가.. 그래도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다들 비슷하게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에 그 시간을 버텼던 거 같다.
첫째는 병설 유치원을 다녔는데, 그 유치원의 가장 큰 단점이 방학이 매우 길다는 거다. 초등학교와 동일하다. 그 말인즉, 겨울 방학부터 이어진 집안에서의 생활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 해 3-4월은 정말 반은 미쳐있는 상태로 보냈었다.
그때의 내 인스타를 보면 정신이 반쯤 나가있음이 너무 분명했다. 하루는 아이들 사진을 올리며 '그래도 감사'를 올리고 다음날은 어질러진 집을 찍고 '내 정신상태'라고 올리고 다음날은 커피사진을 올리며 '아이들 노는 동안 잠깐의 여유'라는 글을 올렸으며 또 그다음 날은 낮 2시쯤 '맥주가 너무 필요한 상태'라는 글 따위를 올렸다. 괜찮고 싶었으나 괜찮지 않은 상태였으리라..
이맘때쯤이었던 거 같다. 5월 중순.
학교에서 유치원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아이들을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내도 된다고.
길고 긴 코로나가 드디어 끝이 나는 가했지만, 아이들은 일주일 학교를 나가다가 다시 쉬다가를 반복했다. 일상이 잘 굴러가지 않으니 심적으로 참 힘들었다. 아무리 계획 없이 지내는 즉흥적인 대문자 P인 인간이라도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하나도 없이 흘러가자 미칠 것만 같았다.
나의 삶이 다시 신생아를 키우던 그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았다. 내 맘대로 뭐가 잘 안 되던 그때.
그렇게 잘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코로나는 그로부터 2년 뒤 여름방학이 끝나기 3일 전 아이 둘 다 열이 났다. 코로나였다. 이틀뒤에 나랑 남편도 코로나 진단을 받았다.
매트리스를 거실에 쭉 펼쳐두고 다 같이 누워서 티브이를 켜고 열을 측정해서 그나마 열이 덜 나는 1명이 물 심부름을 했으며 머리맡에 약을 두고 같이 먹고, 그때 아이들이 한참 빠져있던 흔한 남매 유튜브를 새벽 6시부터 잠들기 전까지 내리 봤다. (지금도 평일은 티브이를 보지 않고 주말만 보고 싶은 예능 한두 편만 보기 때문에 아주 파격적인 삶이었다.) 그렇게 다 같이 누워서 먹고 자고 먹고 자기를 반복해서 일주일을 보냈었다.
다른 걱정 없이 그저 열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가족 모두가 동시에 코로나가 왔기 때문에 누구든 자기보다 더 아픈 사람을 보살폈고 (아이든 어른이든) 증상을 공유하며 흔한 남매를 보며 꺌꺌 웃으며 보냈다.
아이들은 코로나에 다 같이 걸린 그 시기를 아직도 회상한다. 참 좋았다고. 누군가에겐 지독히 아팠을 바이러스가 또 누군가에겐 한없이 외롭고 혼자임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을 바이러스가 다행히 우리 가족에겐 다 같이 누워서 아프고 열이 나고 그래도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또 다 같이 누워있을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날의 40도 가까이 열이 나서 서로서로 죽겠다를 외쳤던 아픔보다는 흔한 남매 보며 누워서 웃었던 그 분위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