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6 시작 08화

34살 육아도 전업주부도 체질일 수 있을까..?

사실 난 체질 같은거 안 믿어.

by 쏜맹


육아는 언제 해도 쉽지는 않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될 때는 정신보다는 육체를 갈아 넣어야 한다. 언제 잘지도 모르고 언제 안 잘지도 모르고 언제 배고플지 가늠이 잘 안 되고 왜 우는지 몰라서 그저 동동거리며 이리저리 분주하고 조금 더 커서 놀이터를 가던 카페를 가던 아이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켜야만 했던 시절. 그 시절이 지나고 얼마간의 휴식기가 있었다. 그게 내 나이 34살. 아이들 7살, 5살 (물론 둘째는 진상시절이었지만 두 번째라 그래도 무난했던 느낌... 이놈의 미화..) 몸도 예전 아기였을 때보다 편해졌고 다른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도 줄어든.. 그런 상황이었다.


첫째 아이 5살 되던 때에 엄마표영어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여러 권 읽고 집에서 사부작사부작 엄마표를 진행했다.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고 한글책과 영어책을 함께 읽어주었다. 한글책은 아이 1살 때도 이미 읽어주고 있었다. 책만 읽어줬는데 첫째는 6살 시작 무렵 한글을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7살에는 영어도 띄엄띄엄 읽기 시작했다. 여느 엄마표에 성공한 아이들처럼 문장을 외운다거나 본 영상을 똑같이 흉내 내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담 없이 아이가 잘해주었다.


지금생각하면 애들마다 한글 읽는 시기 다르고 발달이 다른 건데 당시에는 그게 내 업적이고 나의 가치였다.


아이가 잘하면 잘할수록 내가 잘 한 느낌이었다. 괜히 커피를 마시다가도 목소리가 커졌던 거 같다. 그럴 땐 이렇게 해봐요. 이럴 땐 그렇게 해봐요를 말하며 신이 났었다. 그때 아마 나의 육아동지들이 날 싫어했던 거 같다. 아주 확고했으니까.. 아이가 아직 한글을 모르고 영어를 모르는 건 엄마가 안 해줘서라는 생각. (잘 모르는 사람이 확신을 가지면 위험하다 했는데 그게 나였다.)


둘째는 더 잘했어야 했다. (육아서에 따르면...) 더 이른 나이에 영어 동영상을 시작했고, 한글도 숫자도 첫째랑 동일한 노출을 했었다. 하지만 둘째는 7살이 되고 학교에 가기 직전이 되기까지도 한글을 다 읽지 못했다. 학교에 입학할 때도 쓰기는 잘 안 됐다. 안 해줬냐고 물으면 더 많이 해줬다. 4학년이 된 지금 영어 단어를 띄엄띄엄 읽는다. (우리 딸 나의 공부재능을 가져갔나 보다.)


내가 잘해서 교육분야에서도 첫째 아이가 잘하는 줄 알았던 초보엄마는 둘째 덕분에 그건 내 몫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둘째까지 낳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만 낳고는 깨닫지 못했을 것들..


아이들의 기질과 잘하는 것의 다름을 인정하고 나니 육아는 더 쉬워졌다. 아이들은 다행히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자라고 있었고, 하루하루 작은 고민들은 있었지만 잘 자고 일어나면 쉽게 잊히는 고민들이 더 많았다.


그때의 아이들은 가끔은 (?) 말도 통하고 엄마 커피 마시는 동안 20분 정도는 앉아 있을 수도 있었으며 심지어 수다를 떨 수도 있었고, (주고받기 3번 정도?) 도서관에 가서는 좋아하는 책을 고르기도 했다. 재미난 말들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다.


놀이터에 같이 놀러 가면 나는 무한한 사랑을 선물 받았다. 햇살 가득한 오후 4시쯤의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고 우리 아이들도 거기서 땀을 흘리며 뛰어놀았다. 중간중간 예쁜 돌멩이 예쁜 나뭇잎 예쁜 꽃이 있으면 꼭 나에게 선물을 줬다. 아이들의 예쁜 마음을 사진으로 담아두었던 그날들이 가끔 생각이 난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에게 알려준 아이들..


육아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편안했던 시간이었다.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착착 돌아간다는 느낌. 아이들도 나도 잘 성장하고 있었다. 주말 아침 늦게까지 피곤을 외치며 잠든 남편이 예전만큼 밉지 않았고 안쓰러웠다. (가끔..)


그러니까 나도 아이들도 서로에게 1차 적응의 시간을 끝내고 잠시 휴식기를 가진 느낌이었다.


내 마음에 여유라는 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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