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정의하기 어려웠던 순간.
육아의 난이도로 따졌을 때 내 기준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꼽으라면 내 나이 32살을 말하겠다.
첫째는 5살 둘째는 3살이었다. 참 많이도 울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개그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의 나는 개그도 자학개그만 했다.)
우리 아이들은 5살 3살에 동시에 나를 힘들게 했는데 첫째는 밖에서 친구들을 때렸고 둘째는 바닥에 드러누워서 떼를 썼다. 금쪽이로 나오기 딱 좋은 아이 들인 건 분명했다. (그 시절이 지나가니 이렇게 글로 써진다.)
첫째는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고, 엄마인 나는 참고 있음이 보였지만 남들이 보기엔 그냥 손이 먼저 나가는 아이였을 것이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얼마나 많이 이야기해 줬는지 모른다. "이럴 땐 이렇게 하자. 저럴 땐 저렇게 하자. 그래도 안될 땐 엄마한테 와라" 어떤 날은 나도 말로 잘 이야기를 해줬고, 어떤 날은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아이를 잡고 울기도 했다.
그렇게 첫째 5살에 나는 사과를 하고 사과를 하고 아이가 맞았다면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며, 저녁엔 남편을 붙잡고 왜 나는 이렇게 힘든 거냐고 질질 울며 많은 밤들을 보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 다행히 끝이 났다. 급격하게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아이는 감정을 조금씩 표현하기도 하고 본인 감정을 참아내기도 했다. 크고 있었다.
그렇게 첫째의 힘들었던 시간이 끝날 무렵 둘째의 짜증과 화가 시작되었다. 둘째는 일단 울었다. 밖에서는 울지 않고 집안에 들어와서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울기시작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울었다. 대단했다.
입고 싶은 내복이 없다고 울고,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딱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울고, 오빠가 장난감을 안 빌려줘서 울고, 오빠가 장난감을 뺏어가서 울고, 엄마가 오빠한테 먼저 밥을 줘서 울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온 둘째는 기회만 되면 울려고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를 달래고, 아이를 혼내고 모른 척도 해보고 안아도 보고 여러 방법을 썼었는데 아이가 언제 울음을 그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많이 떼쓰고 울었던 둘째는 요즘은 화난다고 짜증 난다고 울음으로 표현하지 않고 드디어 말로 잘하는 아이가 되었다. 너무 말로 잘해서 문제라면 문제다.
31살의 내가 기억이 잘 나지 않음으로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면 32살부터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로 기억된다. (실상은 바쁘지 않음의 시간이 많았음에도..)
아이 둘 다 어린이집을 다녔기 때문에 오전에 시간이 많았다.
어린이집 보내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덕분에 오늘도 집에서 쉬어봅니다"라고 말해줄 수 있을 만큼 집에 있는 게 좋았다. 동네 언니들과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쇼핑을 다니고 옆동네 핫플도 가보고..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 보내두고 바로 만나서 놀 수 있게 저녁에 청소도 열심히 했다. 그땐 참 열심이었다. 노는 것에.. 커피 마시러 안 가면 뭔가 이상했고, 하루를 빠지면 대화에 잘 끼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참 즐거웠다. 매번 가던 그 커피숍을 생각하면 항상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간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 나에게 그 암울하고 눈물 줄줄 나던 그 시절에 시절인연들이었던 내 육아동지들마저 없었다면 꽤나 깊은 우울감에 빠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가 전업주부가 싫다고 느꼈던 부분은 어느 날 갑자기였다.
그전까지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이들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우리 남편이 고맙다'
진심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을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나보다 훨씬 적었고,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빠보다 엄마인 나를 훨씬 좋아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렇게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내 덕분에 밖에 나가서 아이들 걱정 없이 돈을 벌 수 있잖아. 경력도 계속 이어갈 수 있고, 사회생활이라는 명분아래 대부분이 여전히 아이 출산 전과 동일하네. 부럽다.'
동네 언니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만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건 남편에 대한 짜증이 아니었다. 그 무엇으로 정의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짜증이었다.
집안일에 크게 흥미가 없어 대충 살아갈 만큼만 정리했고 요리도 잘하지 못하지만 아이들 굶기지 않을 만큼만 노력했고 청소가 주는 기쁨보다는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럽혔을 때 오는 불만이 더 컸기 때문에 집을 쓸고 닦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집에 있는 내가 스스로 싫어지기 시작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싶었는데, 집에 있는 나에게 나 스스로 가치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고 얘기를 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못했다.
그때 난 전업주부이자 뒤늦은 사춘기가 시작된 30대 중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