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6 시작 07화

33살 주부 사춘기

사춘기가 왜 지금..?

by 쏜맹


나의 10대에는 사춘기가 없었다.


3남매 중 둘째였던 나는 첫째 딸과 막내아들의 지랄 맞음에 사춘기도 오려다가 저러진 말아야지요 끝이 났다. 그때 사춘기를 겪었다면 나의 30대는 더 수월했을까? 란 생각을 참 많이도 했었다.


'왜? 내가? 왜? 나만? 이게 내 할 일인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화났던 건 시댁 제사였나 보다.


결혼하고 대전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회사 반차를 쓰고 기차를 타고 대구로 와서 제사 준비를 도왔다. 그러곤 뒤늦게 일을 마친 남편이 합류했고 제사를 지내고 대전으로 복귀했다. 만삭의 몸으로도 대전에서 대구로 제사를 지내러 갔고, 대구에 와서는 당연히 갔으며, 아이들이 어릴 땐 같이 데리고 다녔고 커서 어린이집에 다닐 땐 어린이집에 보내고 찾으러 가기 전까지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다시 시댁으로 데려오고 일을 마치고 온 남편이 시댁에 도착하면 제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한 지 6-7년이 지나고 며느라기 시기가 끝이난건지 나는 시댁 제사를 어머님과 둘이서 준비하던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싫어졌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었으며, 남편은 회사에 있었고 아버님과 형님은 자리를 비우셨다.


"어머님, 이 씨 집안 제사에 박 씨랑 손 씨만 앉아서 전 굽고 준비하는 거 이상한 거 같아요. 제사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걸 준비하는 과정에 어머님과 저만 이렇게 계속해야 한다면 전 안 하고 싶어요."


그렇게 그날 맘에 담아뒀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들이 술술 나왔다. 일단은 제사 준비를 도왔고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분이 좋지도 안 좋지도 않았다. 그날 전과 함께 맥주 사진을 올리고 우리 딸과 아들에겐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글을 인스타에 업데이트했었다.


다행히 나의 의견은 어머님의 입을 통해 아버님과 형님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그다음 제사부터는 모두가 함께 음식을 준비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아이들도 함께 준비한다. 우리 아들은 전을 잘 굽고 우리 딸은 밀가루 반죽을 잘 묻힌다. 더 이상 제사가 스트레스가 아니게 되었다.


그럼에도 전업주부에게 사춘기는 너무 위험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나는 1인분의 몫을 해내고 있는지? ' 10대에 했으면 더 좋을 질문들이 30대의 나에게 찾아왔다. 모든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하게 결론이 났다.


'나도 점심 먹고 커피 한잔 들고 사람들과 얘기하며 회사로 가고 싶다.' (그냥 허세를 부리고 싶은 10대 같은 느낌)


참 나다운 결론이었다. 노력은 하지 않고 더 높은 무언가를 갈구하며 내가 있을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고 행동하면서 더 나은 뭔가를 위해서는 시간을 쓰지 않는.. 전형적인 입만 살아있는 스타일을 의인화한다면 그게 내가 아닐까 싶다.


그저 힘들고 힘든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하지만 세상도 만만치 않았다. 7년이라는 시간을 경력단절로 보내고나니 특출나게 잘하는거 없는 나는 역시나 돌아갈 곳이 없었다.

나는 그 사이 새로운 생명을 낳고 키우고 낳고 키우고를 반복하고 집안일을 잘하지는 못해도 매일매일 성실하게 해냈으며, 아이들 입는 거 먹는 거 자는 거 노는 것에 매사 최선까진 아니어도 내 에너지 대비 70프로는 항상 쓰고 있었는데 나의 이런 작고 큰 노력의 시간들은 그저 전업주부라는 말로 불려졌다. 유능하지는 않았지만 무능하지도 않은 사회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억울했다.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그때의 나에겐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내 가치의 증명이 필요했다. 어딘가에서는 나도 돈을 주고 쓰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필요했다.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아이들 키우며 책 육아했던 것이 좋았어서 초등학교 방과 후 독서 선생님 자리에 지원을 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그래도 서류는 통과를 했고 면접은 봤다.


면접을 보러 가던 날 동네 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근처 초등학교에 갔다. 입고 갈 정장은 당연히 없었기에 친언니한테 빌렸지만 면접을 보러 간다는 그 기쁜 마음만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다시 육아를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가능성을 봤다. 면접에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맘먹으면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안일한 생각을 당시의 나는 했었다. 좀 더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때의 나는 무엇이라도 지원하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약간의 방황과 순응..


그리고 사춘기도 점점 끝이 났다. 나도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 싶으니 그 일은 나중으로 미뤄두고 다시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부지런히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다니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새로운 놀이를 하고 놀이터에서 같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아이들의 비중을 많이 두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06화32살 전업주부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