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26 시작 11화

36살 니기미지기미-2

너무 보고 싶은 그대에게

by 쏜맹


예고된 죽음은 없다지만 우리 아빤 너무했다.


평소 아빠가 하던 말이 있었다. 시집와서 평생을 가난하게 산 본인의 부인에게 죽기 전에 얼마만큼의 돈을 꼭 쥐어주겠다고. 그리고 병원에서 질질 끌지 않고 죽고 싶다는 말도 입버릇처럼 했다. 거짓말처럼 아빠는 그 모든 약속을 지켰다. 그 약속은 본인을 위한 약속이었지만 남아있는 자들은 너무 힘들었다.


마지막 인사할 시간을 줬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아직도 한다. 단 일주일, 아니 삼일.. 아니 적어도 몇 시간이라도..


아빠의 죽음은 너무가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돌아가시고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가시기 전엔 같이 살지 않았고 가끔 아빠를 만났으며, 마지막 순간에 나는 없었고, 그저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모습으로 확인한 아빠의 그 모습은 평소의 아빠와 너무 다르고 생경해서 우리 아빠가 맞나? 가짠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아빠의 사진은 언니의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이라 참 고왔다. 장례식장에 왔던 고모들도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참 이쁜 사진 했다고.


7남매 중 장남이었던 아빠는 뭐가 그리 급했는지 누나들을 두고 제일 먼저 갔다.


장례식장에서의 다른 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두 가지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나의 손님은 크게 없었고 맞이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내가 거의 빈소를 지키게 되었다. 아빠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있는데, 아빠의 동생인 광주 고모가 옆에 슬 앉으셨다.


"머가 그리 급해서 갔소? 일하기 싫어서 놀러 갔구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오빠의 죽음을 얘기하는 고모의 말을 듣고 있자니 그곳이 장례식장이었는데도 웃음이 피식 났다. '우리 아빠 고생만 하다 갔네'라고만 생각하고 있다가 광주 고모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 우리 아빠 허리도 안 아프고 다리도 안 아프겠네. 좋아하는 소주 한잔하면서 우리 보고 있겠네. 좋네.


그리고 장례식장 두 번째 아침이었나.. 마지막날 아침이었나..

다들 눈이 퉁퉁부어있고 아빠를 좋아하는 모두가 모여 아침을 먹으려는 그 찰나에 엄마가 말했다.

"희야 아빠 오라 해라" 그 말은 농담이 아니었고 아빠가 없으니 엄마가 아빠를 불러오라는 얘기였는데 얘기를 하면서 여기가 아빠의 장례식장이라는 걸 깨달은 엄마는 울음을 터트렸다. 겨우 한 숟가락 먹어보려던 나도 엄마랑 같이 울었다.


짧았던 장례식장이 끝나고 나머지 가족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 언니, 나, 동생 이렇게 넷이서 다시 본가에 갔다. 서로가 기억하는 아빠에 대해 한참을 얘기하다 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집은 시골 중에서도 시골이었고, 우리가 자취를 하고, 결혼을 하고 집으로 들를 때마다 아빠는 골목 어귀에서 우리를 기다리셨다. 쪼그려 앉아서 먼 곳을 바라보면서. 그때 조금 더 반갑게 인사할걸.. 여기 왜 이러고 있냐는 말 대신 포옹 한번 더 해드릴걸..


아빠와의 시간이 부모와의 시간이 굉장히 많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아빠의 늙어감을 체감했었다. 근데 모른 척했었다. 허리가 아프다는 아빠를.. 다 같이 놀러 가면 다리가 아파 걷기 힘들다는 아빠를.. 만나면 그때만 잠깐 걱정을 하고 다시 아빠가 없는 나의 일상으로 돌아갔던 거 같다. 신경 쓸 것들이 많다는 핑계와 함께..


시간이 지나면 산사람은 살아지더라를 우리 가족 모두가 체감했다. 혼자서 힘들 엄마를 대구로 모셔오자는 언니의 의견에 두 달 넘게 같이 지냈다. 그러고도 수시로 엄마를 대구로 부르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안동으로 찾아갔다. 낮시간에 애들이 학교 가면 엄마랑 같이 산책도 하고 커피도 한 잔 하며 아빠를 떠올렸다. 저녁이면 퇴근한 가족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울기도 많이 했다. 그때는 엄마랑 언니와 모여서 아빠 얘기를 하며 웃기도 많이 웃고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그렇게 많이 울길 잘했다. 다 같이 아빠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가족과 아이들 그리고 남편이 함께 있음에 더 많이 감사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누구든 언제나 갑자기 죽을 수 있음을 선사했고 그랬기에 이전과는 아이들을 보는 나의 눈도 남편을 보던 나의 눈도 남은 엄마나 시부모님을 보는 눈도 많이 변했다.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까웠고 뭐라도 더 자주 많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 덕분에..



아빠 덕분에 나는 인생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다.

함께하는 시간의 고마움을 알게 되었고 찰나의 순간들이 더 애틋해졌다.

아빠 덕분에.. 우리 기덕이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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